갤러리신라 '공간과 개념사이'

입력 2020-02-16 06:30:00

리차드 롱 작
리차드 롱 작 '산원'(San Circle)

현대미술의 한 양식인 개념미술은 완성된 작품보다는 아이디어나 과정을 중요시하며, 좁게는 기호나 문자 등 표현양식을 말하고 넓게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 같은 새로운 미술형태를 포함한다. 따라서 개념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난해성'이지만 역설적으로 '이해하기 힘듦'이 개념미술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갤러리신라는 올해 첫 전시로 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남기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인 리차드 롱, 알란 찰턴, 로버트 베리, 키시오스가 등 4명의 개념미술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간과 개념 사이'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의 특색은 개념미술이 지닌 특징 중 하나인 '작품의 경험방식'에 관해 과거 미술과 차이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시는 실제 전시공간과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그런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작품의 의미형성과정은 어떤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대미술은 공간 내 사물을 배치함하고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간성을 더함으로써 그것이 회화와 대비되는 연극성을 나타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즉 관객이 정적으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오브제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며 감상(참여)함으로써 관객과 오브제 사이 일어나는 긴장이나 관계성이 현대미술의 요체가 되고 있다.

'공간과 개념 사이'전은 이런 이유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개념미술을 주도해온 4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개념미술의 매력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기획됐다.

흔히 회화미술이라면 캔버스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만을 인정했다면, 개념미술은 매체와 상관없이 작가의 '개념'이 공간 안 '오브제'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이 같은 전개과정에서 리차드 롱은 '공간'에 초점을, 알란 찰턴과 로버트 베리는 작가와 관객 간 '개념'에 집중하고, 키시오스가는 사물 간 '관계'를 중점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감상 포인트를 지적하자면, 대지미술가인 리차드 롱의 작품은 작품 주변을 산책하듯 보는 것이 좋다. 원형으로 놓인 58개의 돌은 관객이 보는 방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 생각해보자. 각각의 각도에서 보이는 구성과 돌들의 표면, 그 느낌에 집중할 때 작가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특히 리차드 롱의 작품 '산원'은 1993년 작으로 작가가 우리나라를 찾아 소백산 등을 등반하면서 느낀 감성을 우리나라 화강석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어 문자작업으로 개념미술의 기초를 놓은 로버트 베리의 작품에서는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모노크롬(단색) 작업을 평생 해오고 있는 알란 찰턴의 작품을 보면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번 전시 4명의 작가들 중 가장 개념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에 속하는 두 사람의 작품은 관객들의 시선을 '물리적인 공간'에서 '개념적인 공간'으로 도약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재질의 대상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키시오스가의 작품은 목재와 철재가 주는 각각의 느낌의 대비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집중해 볼 대 그의 매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갤러리신라의 올해 첫 전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전 미술에서는 불가능했거나 거부돼왔던 시각과 촉각, 부분과 전체, 작품과 주변 공간, 동일성과 다양성의 공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전시는 29일(토)까지. 문의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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