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포의 유람선

입력 2020-02-10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1912년 4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국의 초대형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는 대부호와 귀족들을 비롯한 2천여 명의 승객과 선원을 태우고 미국으로 첫 항해에 나섰다. 타이타닉호는 항로에 얼음과 빙산이 있다는 다른 선박들의 경고도 무시한 채 나아갔다. 결코 '가라앉지 않는 배'를 만들었다는 영국인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찢기며 속수무책으로 침몰했다.

기울어 가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 사투를 벌였지만 1천500여 명이 영하의 바닷속에 잠겼다. 특히 3등실 승객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나치 독일이 체제 선전용으로 건조한 대형 여객선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고는 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였다. 1945년 겨울 동부전선의 피란민을 태우고 발트해를 항해하던 이 배는 소련군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1시간여 만에 가라앉았다.

선장과 몇몇 선원들이 '각자 알아서 탈출하라'는 말을 남긴 채 배를 빠져나간 가운데 9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대부분이 아이와 여성들이었다. 2014년 그 잊을 수 없는 봄날, 진도 인근 해상에서 300여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를 미리 보는 듯한 장면이다. 지난 5일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순식간에 공포의 유람선으로 변했다.

배 안에 '우한 폐렴' 환자가 한꺼번에 10명이나 발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감염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탑승객 하선을 전면 불허하고 2주간 선내에 머물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보름 동안이나 저마다 선실에 갇혀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여행객들은 졸지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본 정부로서는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상조치였다.

지난달 30일에는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의 한 항구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6천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배에 갇힌 적도 있었다. 우한 폐렴 의심 증상을 보인 두 명의 중국인 탑승객 때문이었다. '공포의 유람선'이 어찌 배에만 국한된 일일까. 무능한 선장을 만나거나 불순한 세력이 개입되면 국가라는 유람선 또한 좌초와 고립의 위기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 공포와 절망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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