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을 갑자기 경질하였다. 형식은 사임이지만 사실상 해임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션스 장관 본인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사임한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세션스는 2016년 대선에서 상원의원 중 최초로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트럼프 내각 초대 법무장관은 당연한 포상이었다. 세션스 장관은 그러나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른바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하는 특별검사를 해임하거나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수사 불개입 입장을 공개한 후 실제로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법무장관이 없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경질이 사임이 아닌 해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관 시절 세션스는 이런 성명을 낸 바 있다. "내가 취임한 뒤 연방 법무부가 미국 시민의 안전과 권리 보호, 경제성장 촉진, 범죄 경감, 이민정책 강화, 그리고 종교자유 증진 등 대통령 정책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장관직에 있는 동안 연방 법무부는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하게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훌륭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장관으로서의 소신이 뚜렷한 게 큰 이유일 수 있다.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한 영향을 받지 않아야 오히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여론의 분위기도 한몫했을 수 있다. 권력자나 외부 세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는 인식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결정과정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차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법무부의 영어 명칭(Ministry of Justice)을 직역하면 '정의부'이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 등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법에 관한 일'(Legal Affairs)을 다루는 부서가 아니라 '정의 실현'을 담당하는 부서라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의 참모 이전에 한 국가의 법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부서 책임자가 법무부 장관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법무장관의 행태는 걱정스럽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이어 추미애 장관 역시 취임 직후부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검찰 힘 빼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 정권을 수사할 때 검찰에 보내던 박수와 환호가 미처 잦아들기도 전이다.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언사는 참으로 낯설다. 며칠 전 공개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보면 현 정권이 왜 그토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찰 수사 방해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공소장에는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경찰이 권력의 수족처럼 하명수사 정도가 아니라 청부수사를 한 정황도 담겨있다. 아직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로 확정되지는 않았기에 사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실로 엄청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 선거에 직접 개입했다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다. 미국과 한국이 다를 바 없다. 추 장관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정파적 고려에 따라 공소장 비공개를 고집한 것은 한마디로 자충수를 둔 것이다. 공개재판의 원칙상 공소장은 어차피 공개될 수밖에 없다.
공소장 비공개 결정은 오히려 내용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실명까지 공개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범죄사실을 기록한 공소장은 사생활 영역이 아닌 공적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프라이버시를 상실함으로써 더 이상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정파적 이익 수호에 매달리는 법무부 장관이 정의실현 부서의 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른바 '큰 꿈'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 달라져야 한다. 이제라도 특정 정파의 전위대 역할을 거부하고 대한민국의 정의를 실현하는 부서의 수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법무부가 왜 '정의'를 표방하는 부서인지 본질부터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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