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일기예보와 종교

입력 2020-01-29 09:58:52 수정 2020-01-29 15:01:08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공영방송에서 일기예보를 하는 기상캐스터는 우리나라 전체와 주변국 일부가 보이는 인공위성 사진으로 구름의 모습과 이동 경로를 알려주면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한 주간 날씨를 예보한다. 기상캐스터 뒤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관계자들이 정확한 예보를 위해 슈퍼컴퓨터에 쌓아 놓은 많은 자료와 그동안의 경험들을 동원한다.

일기예보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그 예보를 보는 시청자 모두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일기예보를 준비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많은 경비가 들 것이다. 이 때문에 시청자인 우리는 세금과 각종 상품 구매 행위를 통한 광고비 부담으로 그것이 가능하도록 협조하고 있다.

종교가 담당하는 영역은 우리의 삶에서 일기예보가 차지하는 영역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넓으며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부에 등록된 종교 단체 수는 수백 개인데 그중 3대 종교만 헤아려 본다면,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 수는 약 6만 개, 성직자의 수는 12만 명을 넘어선다. 불교 절은 약 1만5천 개, 스님의 수는 2만 명에 가깝다. 천주교 성당은 공소를 포함하여 약 3천 개, 성직자 수는 5천 명에 가깝다. 이들 세 종교 단체에서 수고하는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수는 다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지면의 제한으로 여기서 언급할 수 없는 각종 종교 단체들을 다 합친다면 그 수가 대단하고 이것을 유지하는 데 드는 경비 또한 대단할 것이다. 일기예보를 위한 경비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은 틀림없다.

일기예보는 그것을 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든 국적이 다른 사람이든 모두에게 해당되고 의미 있는 도움을 준다. 이제 우리 종교도 자신의 단체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도움이 되는 선을 넘어 일기예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일기예보만이 아니라 날마다 첨단과학을 동원하여 알려주는 온갖 자료들을 손쉽게 사용하여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만 들고 있어도 대단히 많은 가능성들을 손안에 들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현재 신봉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몸에 익어서 자신이 속한 종교 단체 안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웬만한 불편은 어렵지 않게 견디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종교적 진리도 일반 진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어야 비로소 받아들인다.

우리 기성세대는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것을 종종 체험한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렇게 해야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발생해서 엄습해 올 그들의 앞날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 바뀌어야 할 것은 그들이라기보다 기성세대의 의식구조와 생활 형태이고 종교에 대한 생각과 신봉 방식일 것이다.

기성세대가 이 문제에 대해 현명하게 생각하여 옳은 선택을 해나가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의 신앙생활 내용과 방식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외면할 것이다. 이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을 찾으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찾았다고 생각하는 길을 주저하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걸어가는 새로운 길이 엉성해 보일지라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고 그럴 여력도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흐르는 세월만이 그 엉성한 길을 수정할 것이고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교체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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