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음악동아리 활동을 권하던 고교 선생님의 말씀도, 딴따라를 업으로 삼으면 빌어먹고 산다는 친척 어른들의 말씀도, 소년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수능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예체능으로 돌연 방향을 틀어버린 고집쟁이 시골 소년은 벼룩신문에 적힌 온갖 음악 학원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꿈을 향한 길을 모색한다.
"영화음악 안합미데~이. 우리 학원은 체르니 합미데~이."
매주 월요일은 벼룩 신문이 재발행되어 길에 비치된다. 하굣길에 신문을 빼 들고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광고에 올라온 피아노 학원에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보지만, '영화음악…' 이야기만 들리면 다들 대꾸도 없이 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번 똑같은 전화를 받아 온 학원 선생님들도 귀찮을 만도 하겠지만 매주 발행되는 신문에 똑같은 광고가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소년은 아랑곳없이 다음 학원으로 다이얼을 누른다.
"안 그래도 전화 기다렸어요. 학생."
목소리에 낯이 익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전화를 걸었을 때 소년의 꿈에 대해 귀 기울여 준 선생님인 듯하다. 그 친절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영화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았다며 소년에게 전화번호를 건넨다. '노력하니 되구먼.' 싶었을 거다.
"음. 뮤지컬이란 말이지~"
그렇게 사부자기 시작된 첫 제자 - 스승의 인연도 벌써 몇 해가 흘렀다. 소년은 스승이 졸업한 음대 작곡과로 입학했다. 제대 후에도 스승을 따라 뮤지컬팀에 합류했다. 그토록 꿈꿔오던 영화음악 관련 일은 아니라도 뮤지컬 보조원으로 일하며 공연 분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었다.
이젠 버럭 호탕 치는 극장 감독님으로 인해 주눅 드는 일도, 집에 데려다준 배우가 손이 아닌 발을 사용해 무례하게 차 문을 닫는 일도, 사람들 앞에서 바보처럼 무시당하는 일들도 "그려~러니" 한번 속삭이면 자연 치유가 가능해질 만큼 짬밥을 먹었다. 더 정확히 말해 어깨너머로 뮤지컬 제작을 배운지 어느덧 3년이다. 더 정확히 말해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소년,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이듬해 인기상을 받으며 쾌거를 이룬 작품이 상업 뮤지컬로 거듭나기 위해 제작사와 한창 협의 중이다. 몇몇 인터뷰들이 지면에 실리면서 지역 연극 단체로부터 작곡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서울에 있는 대형 뮤지컬 회사의 음악팀으로 합류를 앞두고 있다. 준비해오던 차기 작품은 한국 뮤지컬 공모전에 시범 공연까지 선정되면서 드디어 25살 예술 인생 첫 황금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소년 스스로 선택한 이 길에 막상 와보니 '쉽지 않겠다.' 싶었겠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가오 상한다.' 싶었을 거다. 홀로선 소년에게는 '이 약진이 참 다행이다." 싶었겠지만 내심 '나만큼 노력한 사람 없었을 거야.' 싶었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자만심은 그때 오는 법이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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