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입시 그리고 취업까지 해마다 새해가 되면 간절한 기원의 마음들이 무르익는다. 우리 지역 대구에서 그런 기원의 마음이 쌓이고 쌓인 곳은 팔공산이 아닐까. 대학 시절, 팔공산에서 잠깐 굿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현장은 강렬한 경험으로 내 모든 세세한 감각들을 곤두세운 기억이 있다. 하늘을 향한 기도와 절절한 인간의 염원이 담긴 굿판은 고대 원시사회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올 3월 헝가리에서는 한국의 '굿'을 주제로 한 대형 사진전이 열린다.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상처가 많은 한국의 굿을 만났다. 그 옛날에는 지배층의 종교 때문에 서민의 종교로 밀려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혹독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런 핍박은 미신 타파를 중요 과제로 삼았던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까지 계속됐다. 상처만 안은 채 그 원형이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의 '굿'에 주목한 이들이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다.
사진가의 입장에서 볼 때 삶과 죽음, 희망과 좌절, 신과 무당과 인간의 기운이 극렬하게 피어나는 굿판은 완벽하게 매력적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김수남, 김동희, 이한구, 안세홍, 이규철, 박찬호 등 6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함께한다. 총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 한국의 무속신앙을 연대기처럼 마주할 수 있다. 사실 굿 작업은 실로 오랜 시간의 '노력'과 '애정'이라는 묘약이 필요하다. 매서운 갯바람을 맞으며, 한겨울 산 정상에서 폭설과 마주하며 인류의 무형유산인 굿판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뭐랄까, 가장 마음이 내려앉는 작업은 고 김수남의 작업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을 누비며 굿판을 촬영해 온 김수남은 국내는 물론 시베리아에서 적도까지 샤머니즘의 흔적을 앵글에 담은 사진가다. 검푸른 바다에서 해풍과 파도에 맞서 삶을 개척하는 이들의 섬, 제주의 굿판을 담은 김수남의 작품들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숨결처럼 스며들어 있다. 평생 굿판을 누비며 굿판에서 울고 웃던 그는 평소에 늘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현장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는 태국에서 새해 축제를 취재하던 중 카메라를 든 채 세상을 떠났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신과 인간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만나고, 그 모든 만남이 펼쳐지는 곳이 굿판이요, 무당들이 '굿'을 시작할 때,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개개인의 삶은 자신이 주인공인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간절한 기원을 비는 대상은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세종실록을 보면 흰 쥐는 길하고 좋은 일이 생기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하니, 경자년 새해에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이 하나쯤은 이뤄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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