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협 (사)팔공산문화포럼 이사
조선조의 명재상이던 류성룡은 관직에서 퇴임하고 낙향하여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징비록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피해가 컸던 임진왜란 7년 전쟁을 회고하고 반성하여 다시는 이 같은 낭패스런 참화가 없도록 조심하고 대비하자는 데 큰 뜻이 담겨있는 책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나같이 불초한 사람이…지난날을 생각해보니 황송하고 부끄러워…용납할 수가 없다. 한가한 틈을 타서 내가 보고 듣고 한 임진(1592)년으로부터 무술(1598)년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대강 기록하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나 모두 당시의 사적이므로 버릴 수 없으며…이로써 내가 전원에 있으면서도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뜻을 표시하기로 하고, 또한 어리석은 내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나타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진실로 국정의 중요 책임자로서 능력의 한계와 직무수행 중의 잘못을 통감하고 나라와 백성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징비록을 썼다고 본다.
봉건시대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 벼슬에 있던 사람이 고향에서 근신하면서 재임 중 수행한 국정의 주요 사항에 대해 사실을 기록하고, 과오를 자성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음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징비록을 통해 국민의 공복으로 막중한 권한과 책무를 부여받은 고위 공직자들은 재임 중은 물론 퇴임 뒤에도 올바른 처신과 진중한 언행으로 국민 신뢰를 두텁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봉건시대의 역사는 흘러간 과거사라 하더라도, 우리가 혼을 쏟고 피땀 흘려 열어온 격동의 현대사를 더듬어 보면, 지도자로 받들었던 많은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과 언행에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다. 피아(彼我)를 따지는 진영논리나 국론분열상을 지켜보면, 정부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이 과욕을 추구하는 모습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공동체에 혼돈을 더하게 하고 있어서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불행이 된 탄핵정국에서 정부를 통괄하던 사람은 자성과 근신보다 '내가 아니면 안 되겠다'며 정치권의 앞장에서 투쟁하고, 당장의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도 총선과 대선 준비 관련 언행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지난 날, 국무총리 취임사에서 한분은 "모든 국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국정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분도 "지난 정부의 무능과 불통과 편향에서 유능하고 소통하는 새 정부를 통괄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 벽두에 두 전직 총리 취임사를 반추해볼 때 과연 국민에게 한 약속들이 지켜졌는지?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 과거보다 나아졌는지? 국민에게 밝은 비전을 제시하고 큰 희망을 주었는지? 모두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두 분은 스스로 평가하여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켰고, 임명권자를 잘 보좌하였으며, 국민의 마음을 읽고 수렴하여 밝은 비전을 제시하고, 큰 희망을 성취할 수 있는 의지와 봉사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할 때에만 또 다른 공직을 담임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이전에 국무총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소상히 회고하여, 새 시대 밝은 선진사회와 통일의 과업을 성취시켜 가는데 보탬이 될 보람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징비록을 써서 후세에 길이 남겨줄 것을 정중히 공개 청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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