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운동 없지" 당구에 푹 빠진 어르신들

입력 2020-01-13 18:30:00

골프 마니아 어르신들도 당구장으로 발길…당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르신들이 당구를 즐기며 옛날을 추억하고 건강도 챙기고 있다. 최재수 기자 biochoi@imaeil.com
어르신들이 당구를 즐기며 옛날을 추억하고 건강도 챙기고 있다. 최재수 기자 biochoi@imaeil.com

최근 당구가 어르신들의 실내 스포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어르신들은 단순히 당구장에서 게임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옛날을 추억하고 건강도 챙긴다. 이런 이유로 골프 마니아를 자처하던 어르신도 당구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당구장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여자 어르신들도 자기 키 만한 큐대를 들고 당구장으로 출근한다. 이들이 뒤늦게 빠져든 당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친구 사귀고 건강 지켜"

지난 10일 대구시광역시노인종합복지관(대구시 수성구 청수로) 2층 당구장.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당구를 즐기고 있다. 파란 당구대 위에 흰색 공 1개, 노란색 공 1개, 빨간색 공 2개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큐대를 잡은 어르신이 공을 칠 때마다 주변에서 훈수하느라 왁자지껄하다. 어르신이 자신의 방식으로 공을 치다 키스가 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어르신은 멋쩍은 웃음을 짓고 다른 이에게 차례를 넘겼다.

어르신들이 즐기는 당구는 4구 당구. 4구 당구는 포켓볼(공을 큐대로 쳐서 당구대 사방에 뚫린 구멍에 집어넣는 경기)보다 힘이 덜 들어 어르신들이 선호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당구의 매력과 사람과 어울리는데에 참맛을 두고 있다. 이곳 당구대 옆의 벽에는 아직도 때 묻은 점수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당구를 즐기는 어르신은 120명 정도. 평균 나이는 75세, 60대 후반부터 94세 된 어르신도 있다. 당구 지수는 100, 200 정도. 300점, 400 치는 어르신도 여럿 있다.

당구반 김길윤(76) 회장은 "당구대를 한 바퀴 돌면 9m 정도 되는데, 하루에 한 시간만 쳐도 2km를 걷게 되는 셈이다.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해 치매예방은 물론 허리에도 좋은 운동이다. 어르신들에게 이만한 운동이 어디 또 있습니까?"라며 당구의 매력을 설명했다.

김 회장은 당구가 어르신 운동으로 좋다는 이야기 알려지면서 당구를 즐길려는 어르신이 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느는 사람에 비해 시설이 턱 없이 부족해 시설 확장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 어르신이 4구 당구를 즐기고 있다. 최재수 기자
한 어르신이 4구 당구를 즐기고 있다. 최재수 기자

◆치매예방, 과격하지 않은 전신운동

당구는 사각의 녹색 링 위에 펼치는 공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공끼리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피해가면서 점수를 따야 한다. 또 공을 구석으로 몰아가고 때론 흩뜨리면서 상대를 견제해야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게임이지만 각과 원의 원리를 활용해야 하는 물리와 과학의 응용게임이다. 당구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말했다. "당구는 집중력, 정신력, 감정조절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두뇌 스포츠다. 공의 회전, 각도, 힘, 속도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노년층 치매 예방에도 좋다. 당구를 치면 도보와 맞먹는 운동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니어를 위한 완벽한 운동"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또 "과격하지 않으면서 온몸을 사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좋은 스포츠"라며 "당구는 큐대를 들고 장소를 이동하며 엎드렸다 폈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팔다리 운동은 물론 허리 근육까지 강화된다. 얌전한 전신운동"이라고 말했다.

이극우(91)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 격한 운동은 못하는데 당구는 괜찮은 것 같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친구들 만나 웃고, 어울리는 게 좋다"며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곳 당구반에는 여자 어르신도 많다. 포켓볼을 치다가 4구 당구로 전향했다는 이진옥(87) 어르신은 "당구는 치면 칠수록 재미있다. 이곳에 오면 고수의 지도도 받을 수 있어 좋다. 또한 남자 어르신들이 농담도 잘 받아줘 너무 즐겁다"고 했다.

한충조(83) 어르신은 당구는 체력 소모가 적어 노인들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스포츠라고 했다. "젊었을 때 당구를 많이 쳤는데, 지금은 코스는 알겠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나이 때문"며 껄껄 웃었다.

한봉춘(83) 어르신 역시 "학교 다닐 때 자장면 먹으면서 당구 치던 때가 생각난다"며 "나이가 들어 운동하기 힘든 사람한테 당구만큼 좋은 것이 없다. 젊었을 때 저거 칠십 넘어서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실감이 난다. 지금 우리 나이에 서너 시간 집중하고 서 있고 걷는 게 적은 운동이 아니다. 움직여야 하고 머리도 써야 하고 공 겨냥하려면 허리도 숙여야 한다. 큐대를 지속적으로 들고 있으려면 팔에 힘도 있어야 한다. 계절에도 관계없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춥든 덥든 할 수 있는 게 당구라 시니어에게 정말 적합한 운동"이라며 당구 예찬론을 폈다.

◆"당구는 어르신에게 권할 만한 저강도 운동"

한준구 헬스트레이너는 "당구는 과격한 신체 접촉이 없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저강도 운동으로, 만성질환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공을 칠 때 취하는 기마 자세는 하체 근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한 트레이너는 "다만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허리가 약한 어르신에게는 다소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전에 충분하게 스트레칭을 할 것을 권했다.

한 트레이너는 당구는 실력이 늘수록 공략법이 복잡해져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두뇌 활동도 활발해진다고 했다. 또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사회적 만족감도 얻을 수 있고, 이로 인해 뇌와 관련된 질병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한 트레이너는 "또래들과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 인지장애와 치매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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