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집권 초기부터 정책 순위서 밀려
올해는 '혁신동력강화'라고 명칭
내용은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꿔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아
굳이 슘페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경제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전체 실질성장률이 2017년 3.2%에서 2019년 2%로 거의 절반 가까이 추락하기도 했지만 경북지역은 그보다 훨씬 상황이 나빠서 2017년에 이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대구도 조만간 그리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혁신성장이 시급한 곳이 대구경북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서둘러 혁신성장이 되지 못한다면 대구경북지역은 10년이 안 되어 고령 세대로 가득 찬 거대한 슬럼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가장 눈 빠지도록 기다리는 곳도 대구경북지역이다.
집권 직후 나온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다섯 가지 경제 정책(5대 전략이라 불렀음) 중에서 혁신성장은 최후순위에 두었었다. 가장 머리에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둔 다음 그다음으로 공정경제, 서민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창업과 혁신성장을 배치했다. 그리고 혁신성장의 내용도 '창업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이나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매우 축소된 의미로 국한하여 설정한 것이다.
몇 달 뒤인 2017년 12월에 나온 '2018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는 5대 전략을 3대 전략으로 압축한 뒤 일자리-소득주도 전략에 이어 혁신성장을 두 번째로 두었으며 공정경제를 제일 뒤에 배치했다. 여전히 소득주도성장보다는 뒤에 놓여 있지만 공정경제에 앞서 놓였으니 혁신성장의 위치가 상당히 올라왔다. 아마도 청와대의 거부 기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혁신성장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인데 ①8대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하는 것과 ②'전방위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부문에다 혁신이라는 이름만을 갖다 붙였다. 예를 들자면 교육훈련 혁신, 기존 산업 혁신, 노동시장 혁신, 중소기업 혁신, 서비스업 혁신, 전 방위 금융 혁신 등이다. 나머지 하나가 ③규제 혁신과 혁신 인프라 구축인데 기존 규제의 적용을 탄력적으로 면제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이나 혁신성장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런 계획을 야심 차게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성장지원단'을 출범시키고 기획재정부 차관과 함께 이재웅 다음 창업자를 공동본부장으로 영입했다. 김동연 부총리의 2018년 혁신성장 정책은 거기까지였다.
2018년 혁신성장 정책의 실패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임명된 지 4개월 만인 2018년 12월 "혁신성장이 한 발짝도 못 나갔다"는 비관적인 진단을 남기면서 '혁신성장지원단' 민간인 본부장이 사퇴한 것이다. 물론 혁신성장이 안 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긴 했지만 200명에 가까운 혁신성장본부 민간자문위원도 거의 같은 한계를 느꼈다. 다른 하나는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아예 빠져버렸다. 대신에 '경제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이라는 대과제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핵심규제 혁신과 제조업 혁신 전략을 포함하는 주력 산업 육성 대책들이 들어갔다. 8대 선도사업 지원 추진, 서비스 산업 획기적 육성과 같은 것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이미 2018년 계획에 들어가 있던 것이라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2019년은 새로운 혁신성장 정책 없이 지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19일에 나온 2020년 경제 정책 방향에는 혁신성장이라는 말 대신 혁신동력강화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왔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빅3(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자율주행차),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2019년 경제 정책 방향과 대동소이하다. 핵심규제 혁신은 혁신동력강화에서 따로 떼어내 경제 체질개선이라는 큰 테두리 안으로 옮겨 넣었다. 말하자면 내용은 거의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꾸어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혁신성장단의 비판과 한계를 느껴서인지 정부는 새로운 기구인 관계부처 합동 '혁신성장추진기획단'을 만들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집권 처음부터 혁신성장은 정책 순위에서 밀려 있다가 2019년에는 정책과제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2020년에는 혁신동력강화라는 말로 바꿔서 들어왔다. 이 정부에서 혁신성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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