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상여고 악취' 결국 미스터리로 남았다

입력 2020-01-10 18:08:30 수정 2020-01-10 20:30:34

대구시·합동조사단 3개월 넘게 조사했지만 빈손
"사고 원인 물질 밝혀내지 못해" 세차례 회의 후 이메일 논의만

지난해 9월 2일 대구 경상여고 강당에서 조회 도중 학생들과 교직원 등 70여 명이 가스 냄새를 맡고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구급대원과 의료진이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지난해 9월 2일 대구 경상여고 강당에서 조회 도중 학생들과 교직원 등 70여 명이 가스 냄새를 맡고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구급대원과 의료진이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지난해 9월 발생한 대구 경상여자고등학교 악취사고(매일신문 2019년 9월 3일 자 1, 6면 등)의 원인이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대구시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꾸려 3개월 넘게 조사를 벌였지만 명확한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시의 대책도 기존 미세먼지 개선안을 '재탕'한 수준이어서 조사 과정과 대응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상여고 가스 흡입 사고 원인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이하 조사단)은 10일 대구시청에서 "사고 원인 물질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백성옥 조사단장(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은 "초동 조사 당시 강당 내 시료를 채취하지 못해 원인 물질의 성분이나 발생원, 유입 경로 등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외부 요인을 점검하고자 학교 인근 공업지역 주변을 수차례 모니터링했으나 원인 물질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했다.

다만 조사단은 사고 직후 피해 학생과 교직원들이 ▷혈중 일산화탄소 결합 헤모글로빈 농도가 정상 범위인 1.5%를 대부분 넘었다는 점 ▷주로 구역질이나 두통 등 신경계 증상을 호소했다는 점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고 공통으로 진술한 점 등에 미뤄 학교 외부 요인으로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시적으로 배출된 덩어리 형태의 공기(퍼프·Puff)가 기류를 타고 돌아다니다 사고 당시 강당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사공준 조사위원(영남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일산화탄소는 불완전 연소가 일어날 때 발생하는 물질인데, 학교 과학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며 "학생과 교직원들이 사고 이후에도 가끔 비슷한 냄새가 나 북구청에 민원을 접수했고, 지난 2017년에도 비슷한 악취로 학생들을 귀가시킨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 경상여고 강당에서 조회 도중 학생들과 교직원 등 70여 명이 가스 냄새를 맡고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관계자들이 가스누출 확인 및 사고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경상여고 강당에서 조회 도중 학생들과 교직원 등 70여 명이 가스 냄새를 맡고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관계자들이 가스누출 확인 및 사고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3개월에 걸친 합동조사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면서 조사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고 후 18일이 지나 조사단을 꾸린 탓에 초동조사가 어려웠다. 또 조사단은 지난해 11월 중순까지 세 차례 회의를 마친 뒤 추가 논의를 하지 않았고, 두 달 가까이 이메일을 통한 의견 수렴만 거쳐 이날 결론을 내놓았다.

이는 일부 조사위원의 반발을 낳았다. 강당 지하 과학실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김중진 조사위원(대구안전생활실천연합 공동대표)은 "초동 대응 자체가 늦은 상황에서 강당 내부 기류 테스트 등이 학교 측 반대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원인 규명 실패에 이어 향후 대책도 허술했다. 이날 시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기오염 방지시설 교체를 지원해 산업단지 악취관리를 강화하고, 대기 측정망을 확대하는 등 종합적인 대기질 개선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내용은 지난해 초에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종합 대책'에 대부분 포함됐다. 1년 전 정책을 경상여고 대책으로 내놓은 셈이다. 김중진 조사위원은 "어설픈 결론과 보여주기식 행정 탓에 향후 똑같은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만 남겨두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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