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지음/ 도서출판 선 펴냄
<백불고택(百弗古宅) 앞에 선다. 모골이 송연하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나는 백불암 선생의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은 경주 최씨 광정공파 단을 중시조로 하고, 현재 둔산동 옻골에 1616년 입향하여 정착한 대암 선생의 후손이다.…… 백불암은 환갑 년에 새로 지은 호라고 한다. 백부지(百不知) 백불능(百弗能) '모든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또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 백불암의 80여년 인생은 공맹정주(孔孟程朱)를 본받아 인격도야에 일생을 충실하게 소진했던 이유로 실천궁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비는 선비다. 아니, 선비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161~162쪽, 오래된 미래 혹은 지속가능한 과거-대구 둔산동 경주 최씨 종택-의 일부)>
문화탐험가를 자처하는 이상길의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답사기가 아니다. 생각하는 여행, 살아 움직이는 답사, 기억의 반추와 삶을 전망하는 여행과 답사의 전형을 제시한 인문학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으로 숨어 있던 역사와 전설도 짚어내고 있다.
고령의 장기리 암각화를 탐방하고 난 뒤 적은 감상을 보자. <암각화는 추억이다. 무서운 추억이다./ 학문적이고 고고학적인 추억이다./ 역사의 기억이다./ 심연의 역사, 그 뒤의 길고 긴 그림자다./ 임각화는 조용한 횟불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횟불이다./ 타오르지는 않지만 꺼지지 않는다./ 증명(證明)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너의 주소다./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너희가 이렇게 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므로 건재하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다./ …보라, 모든 것을 걷어낸/ 차갑고 알찬 상징을!/ 시간은 진실을 배반하지 않는다.(226~227쪽, 역사 속에 숨다, 현실을 직시하다-고령 장기리 암각화-)>
저자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늑골이 아리고 둔중하다"고 고백했다. 고령 장기리의 암각화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못지 않게 풍부한 예술적 감각을 자랑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좌우대칭의 균형이 엿보이는 검파형문,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문, 후세에 전하는 메시지임이 분명한 듯한 선각문과 원문들을 자세히 보면서 환각에 빠져들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박생광(1904~1985) 선생의 작품을 보고 오면서 "한국의 피카소라고? 아니다. 박생광은 그냥 한국의 박생광이다"는 말을 되뇌었다. 박생광 선생을 누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생광의 그림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속과 불교, 그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민중의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사람을 형성하게 하는 많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이 종교와 역사이다. 나는 종교에 개방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미미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사의 한 부분이다. 박생광의 그림은 이렇게 나의 관념을 정리해 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306쪽, 인간의 화엄(華嚴)을 그리다-화가 박생광!-)>
물질적 풍요 속에서 혐오에 가까운 극심한 세대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의 경험을 거울 삼아 그 해법을 모색하려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기업문화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노력 역시 가속화 하고 있다.
저자 이상길은 "미래는 아직 개척되지 않았다. 과거의 좋은 경험들을 소환하여 원동력으로 삼아, 기계적인 해결이 아닌 인간 본질을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갈망을 작동시켜야 한다"면서 "과거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미래는 과거에서 꾸준하게 성찰과 반성을 얻음으로써 더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320쪽, 2만원.
[지은이 이상길은?]

고령 출생으로 고령 성산중과 대구 성광고, 경북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시라큐스대학(행정학)을 졸업했다. 사병으로 군복무를 한 뒤, 1992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시 체육진흥과장·과학기술팀장·정책기획관·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장·기획조정실장과 행정안전부 재정관리과장·지방행정연수원 기획부장·지방재정정책관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2006년 사이 미국연수를 비롯해 일본, 프랑스, 스위스, 대만 등을 시찰했으며, 교관연찬대회우수상(내무부장관상), 공무원교육훈련유공표창(중앙공무원교육원장상), 녹조근정훈장(대통령)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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