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갈피] 발 밑만 보고 가세요

입력 2020-01-06 18:00:00

박 원 재 율곡연구원장
박 원 재 율곡연구원장

지난 세밑에 경주 답사를 다녀왔다. 근무하는 기관에서 연례적으로 진행하는 전통문화답사 행사의 일환이었다. 경주를 방문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같은 장소인데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석굴암 본존불은 여전히 지금껏 보아온 부처 가운데 가장 잘생겼지만, 뭐랄까 그 잘생김 속에는 얼마간의 슬픔이 녹아 있어 보였다. 불국사에서도 다보탑의 기교보다 석가탑의 단순미에 마음이 더 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릴 적 안방 바람벽에 해마다 한 금씩 그어가던 키높이 표시처럼, 시간의 기계적인 퇴적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번 답사의 최대 기쁨은 경주 남산에 있는 탑곡 마애불상군을 둘러본 것이었다. 답사를 떠나기 전 경주가 고향인 지인으로부터 경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말을 듣고 은근히 기대를 했었는데, 과연 그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남산 동쪽 어귀에 있는 옥룡암이라는 작은 암자 옆에 위치한 이곳에는 높이 10여m, 둘레 30여m 정도 되는 커다란 바위 네 면에 '군'(群)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수많은 불교 관련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조각 내용은 주로 불상과 보살상, 비천상, 보리수, 불탑 등이었는데, 위쪽 산기슭과 붙어 있는 남쪽 면에는 3층 석탑과 1구의 석불 입상이 따로 세워져 있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답사에서 돌아와 인터넷에서 확인해보니, 조각은 23구의 인물상을 포함하여 모두 34점이나 된다고 하였다. 특히 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에는 9층탑과 7층탑 두 개가 양쪽으로 새겨져 있어 다른 마애불상군과 대조를 이뤘다. 조성 연대가 7세기 중엽 정도라니, 그보다 1세기 전에 건축된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추정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되었다.

규모로 보건대, 이것을 조성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을 1천300여 년 전 신라 석공들로 하여금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불상군을 완성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국토를 향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그 염원이 단단한 바위에 선을 내고, 그 선들이 모여 불국토의 형상을 이룬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꿈만큼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없는 듯하다. 꿈이 굳건할수록 떼어놓는 발걸음 또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불국토, 꿈을 향한 석공들의 염원은 힘듦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밑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몇 해 전 봉화 청량산에서 열린 산사음악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많아 차량이 통제되는 바람에 산 아래 일주문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데, 중간쯤 도달하자 가쁜 숨소리와 함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앞에 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초행으로 보이는 그들에게는 절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어 더 힘이 부쳤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뒤에서 비구니 일행이 올라오자 반갑다는 듯이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비구니 한사람이 걸음도 멈추지 않고 나지막이 건네던 대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발밑만 보고 가세요."

어렸을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먼 길을 갈 때가 떠오른다. 어린 걸음에 걷는 것이 지루하면 일부러 땅만 보고 걸었다. 앞을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한참을 땅만 보고 가다 고개를 들면 그렇게 멀어 보이던 교회 첨탑도 어느새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등산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꿈이 굳건한 사람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여 새해에 꿈이라도 세웠다면 그저 발밑만 보고 한 해를 묵묵히 걸어갈 일이다. 1천300여 년 전 극락왕생을 향한 신라 석공의 믿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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