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성공한 갭투자자 A씨 월 평균 2천만원 대출금 이자 허덕이다 잠적
피해자들 "사건 발생한 지 6개월 넘었지만 피해회복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명 '깡통주택 사기 피해'의 후유증이 숙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피해자를 대거 양산한 대구 깡통주택 사기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이 전무한 탓이다. 특히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집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 후유증은 진행형
지난해 대구를 휩쓴 깡통주택 사건의 피해자 김민우(29·가명) 씨는 계약 기간이 한참 남은 원룸에서 나와 최근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왔다. 관리가 되지 않아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은 세입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해결하고 있지만 하수구 처리 등에 관리가 전혀 되질 않다보니 냄새가 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구로 왔던 김 씨는 당시 수성구의 한 다가구주택을 임차했었다. 당시 김 씨가 집주인 A씨에게 계약기간 2년 동안 보증금으로 맡긴 돈은 5천500만원으로,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조사 결과 김 씨가 임차한 다가구주택의 채권 최고액(대출금)은 모두 3억6천만원에 달했다. 여기에 선순위 전세보증금(먼저 전입한 세입자들의 총보증금)도 2억5천만원에 육박했다.
이 다가구주택의 실거래가는 5억9천만원 정도로, 대출금과 선순위 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매매가격을 초과해 집주인이 집을 매매해도 본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주택'이였던 것이다.
주인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성구 다가구 주택에서 6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이 묶여있다는 박모(33) 씨도 피해를 본 여섯 가구와 그대로 살고 있다. 박 씨는 "구속됐다는 말만 들었을 뿐 보상 받은 건 하나도 없다"며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있을 때까지 있다가 나가라할 때 나갈 생각이다"고 했다.
집주인 A씨는 지난해 1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았다. 김 씨뿐 아니라 28명의 피해자에게서 전세금 7억3천만원을 가로챈 혐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김 씨는 "집주인이 구속됐어도 아무런 연락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하는 일을 그만두고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왔지만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 5천500만원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공한 갭투자자의 몰락
사기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집주인 A씨는 왜 범법자가 됐을까. 그는 한때 성공한 갭투자자였다.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갖고 있던 주택들은 시한폭탄으로 변했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금융기관 대출금, 임대차 보증금 등으로 다수의 아파트와 다가구 주택을 취득하는 부동산 투자 방식인 갭투자의 맹점은 두 말할 것 없이 소액의 자기 자금이었다. 자기 자금이 적다보니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2013년 4월 처음 수성구 다가구주택을 사들인 A씨는 5년 만에 달서구에서 5채, 서구에 3채, 수성구에 3채, 동구와 남구에서 각 1채 등 모두 13채(118실)에 달하는 다가구주택 소유자가 됐다. 그가 당시 건물 매입 비용으로 들인 돈은 모두 121억원. 이 가운데 71억원(58.7%)이 은행 채무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세 보증금 등으로 채운 것이었다.
몸집을 불린 A씨에게 위기는 금세 찾아왔다. 추가 대출이 어려워지고 부동산 가격이 정체되면서 월 평균 2천만원에 달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었다. 특별한 수입 없이 매달 들어가는 이자, 생활비 등을 새로운 임차인에게서 받은 보증금으로 충당하던 A씨의 보증금 채무는 결국 68억원(2018년 8월 기준)에 이르렀다. 새로운 임차인에게서 보증금을 받고도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A씨는 돌연 잠적했고 법정에 서게 됐다.
◆막막한 피해 회복
피해자들은 A씨가 구속된 이후로도 별다른 피해 회복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A씨가 소유하던 집들도 경매 절차가 완료되질 않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경매가 진행돼도 문제다. 사기 피해를 본 세입자 대부분은 현재도 원래 살던 집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재산이나 다름이 없는 보증금을 날린 채 빈손으로 쫓겨날 신세다. 다만 임차보증금이 6천만원 이하인 임차인에 한해 2천만원까지 최우선변제로 배당받을 수 있도록 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위안이다.
달서구 성당동 다가구주택에 1억원을 피해본 김모(39) 씨는 "오는 28일 경매 절차가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감정가가 6억9천만원이고 은행 빚이 6억3천만원이다. 최우선변제금을 제외한 보증금 회수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탄식했다.
서구 내당동 다가구주택에서 5년 가까이 살았던 또 다른 피해자 이모(35) 씨도 보증금 1억1천만원을 날릴 처지다. 집은 이르면 5월, 늦으면 7월 새 주인을 찾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감정가가 10억원 내외인 건물의 은행 근저당이 4억2천만원이고, 돌려줘야할 선순위 전세보증금이 10억원에 이른다.
이 씨는 "피해 금액도 가장 많고, 순번으로도 1번이긴 한데 법률상 소액이 우선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해야
피해자들은 선순위 보증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공인중개사들도 공범이라고 입을 모은다. 검찰은 A씨뿐 아니라 A씨와 거래한 공인중개사 3명과 중개보조원 1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70~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
과도한 중개수수료를 챙긴 공인중개사는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최대 6개월 간 자격이 정지된다. 그러나 재판 이후에도 1명만이 영업정지 6개월이란 행정처분을 받았을 뿐 나머지는 별다른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항소한 2명의 공인중개사는 재판 절차가 진행중이고,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가 아니어서 행정처분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위)의 도움을 받아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분쟁위는 지난해 10월 깡통주택 피해자와 공인중개사와의 분쟁을 조정해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 한 공인중개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 1명에게 1천200만원을 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사건을 진행한 조용준 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 조사관은 "앞으로는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의 중개대상물 확인 및 설명 의무가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며 "당사자들도 계약할 때 등기부등본, 확정일자, 실질적 선순위 임차권 보증금액 등 권리 관계를 확실히 확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깡통주택 사기 사건 = 지난해 7월 대구시내에 모두 13채(118실)의 다가구주택을 소유한 40대 남성이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수십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채고 잠적한 사건. A씨가 소유한 다가구주택은 집을 경매로 팔아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인 점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앞서 경북 경산에서도 다가구주택 6채(64실)를 소유한 건물주가 잠적하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A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 세입자는 모두 115명, 피해 금액만 5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검찰은 2018년 8월 이전에 이뤄진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는 돈을 가로채려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나머지 28명의 계약(피해 금액 7억3천여만원)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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