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TV 프로그램, 방송국의 구원투수?

입력 2020-01-05 07: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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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사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재가공해 업로드
구독자 MBC '옛드' 201만명, '옛능' 27만명, '오분순삭' 36만명

MBC에서 운영하는
MBC에서 운영하는 '옛능:MBC 옛날 예능 다시보기'의 한 동영상 썸네일. 유튜브 캡쳐

유튜브를 접하면서 TV를 잘 보지 않게 된 A(36) 씨는 유튜브를 통해 옛날 TV 드라마를 찾아보는 데 재미를 붙였다. SBS에서 올린 '내 남자의 여자'의 편집본을 보며 하유미가 마트에서 만난 김상중·김희애 커플을 꾸짖는 소위 '하유미의 교양강좌' 영상을 보며 오랜만에 속이 뻥 뚫리는 감정을 느낀 것. A 씨는 "방영 당시에는 다른 드라마를 보느라 놓쳤었는데 지금 보니 '차라리 그 때 이 드라마를 봤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다음에는 김수현 작가의 다른 SBS 드라마인 '인생은 아름다워'를 편집해 올려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0년 전, 20년 전 사랑을 얻었던 TV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방송사 유튜브 채널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현재 방송되는 프로그램들의 클립 영상을 유튜브에 제공하지 않는 대신 옛날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지상파 방송사 유튜브 채널로의 유입을 노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옛날 프로그램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들. 크큭티비(KBS), 오분순삭(MBC), 스트로(SBS).
지상파 방송사들이 옛날 프로그램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들. 크큭티비(KBS), 오분순삭(MBC), 스트로(SBS).

지상파 방송사들은 예전에 방송했던 TV 드라마와 예능을 유튜브 컨텐츠로 재가공해 내놓고 있다. MBC의 경우 '옛능:MBC 옛날 예능 다시보기'를 통해 '무한도전'의 인기 에피소드와 '만원의 행복', '무릎팍 도사' 등의 예능 프로그램 한 회 분량을 20분 안팎의 동영상으로 재편집해 올리고 있으며, '옛드:옛날 드라마' 등의 채널을 만들어 '내 이름은 김삼순', '보고 또 보고'와 같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MBC 드라마를 한 회당 15분 분량으로 편집해 올리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MBC는 '오분순삭'이라는 채널을 통해 '무한도전'의 주요 에피소드 명장면을 5분내로 축약해 유튜브 컨텐츠로 올리기도 한다. 이들 채널의 구독자 수는 2일 현재 MBC '옛드'가 201만여명, '옛능'이 26만9천여명, '오분순삭'이 36만여명에 달한다.

MBC 뿐만 아니라 KBS, SBS도 똑같은 방식으로 옛날 프로그램 컨텐츠를 올리는 채널을 운영 중이다. SBS의 경우 'SBS NOW'라는 채널에 옛날 프로그램 뿐만아니라 현재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경우도 축약본을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또 편집자가 전회 방영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댓글까지 엮어 컨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신들이 만들었던 옛날 프로그램을 재가공해 유튜브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레트로 열풍'이다.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1980~1990년대는 한국 경제의 압도적 성장으로 인한 문화적 발전이 시작된 태동기이자 개척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기를 향유한 40대 이상의 대중들에게는 이 시기의 컨텐츠가 향수를 자극하는 컨텐츠가 된다. 반대로 이 시기에 태어난 10~30대들은 비록 투박하지만 '시절이 좋아서 시도할 수 있는 파격'들로 가득한 컨텐츠로 옛날 프로그램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2000년대 중후반 때 나온 컨텐츠까지 주목받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현재 젊은 세대의 바뀐 미디어 시청습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예전만 해도 옛날 프로그램을 보려면 방송사 홈페이지에 유료결제를 하거나 '토렌트'와 같은 속칭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로드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며 '티빙', '푹'과 같은 VOD 서비스를 통한 유료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통해 TV 이외의 다양한 컨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광고 단가 문제로 인해 유튜브에 방송 컨텐츠 제공을 중지한 지상파 방송사는 유튜브로 옮겨가는 시청자들의 흐름에 다급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예전 프로그램들을 재가공해서 올리는 것이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옛날 프로그램 재가공이 잠깐의 수익은 보장할 수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을 예전처럼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의 '성상민의 문화뒤집기'라는 칼럼을 통해 "방송사들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제공하는 이상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문화를 창조하는 것을 점차 버거워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시청자-향유자들은 최근 제작된 프로그램들에 흥미를 서서히 잃고 과거 프로그램이 낳는 기묘한 복고주의의 감각에서만 흥미를 찾는다"며 "레트로 열풍에 그저 만족하며 '지금 현재'에 제기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레트로 열풍은 그야말로 몰락 전 가까스로 반짝이는 몸부림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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