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매일신춘문예] 시 심사평

입력 2020-01-01 03:30:00

심사위원 이태수 ·송찬호

이태수 심사위원
이태수 심사위원

본심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최종까지 논의된 시는 김지영 씨의 '간기 벤, 교차로', 김은 씨의 '태양을 가동하는 방법', 최란주 씨의 '남쪽의 집수리' 등 세 편이었다.

'간기 벤, 교차로'는 남해섬 일대의 땅과 바다에 깃든 삶의 욕망과 열망을 차분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특히 계단식 논이 많은 다랑이 마을의 풍광에서 삶의 그늘과 쇠락한 시간의 주름을 읽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일부 언어가 평이하고 관념적인 사변의 진술로 치우쳐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송찬호 심사위원
송찬호 심사위원

'태양을 가동하는 방법'은 역동적인 언어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는 검은 폐유를 닮은 그림자들이 흘러나왔다"는 시구 같은, 현대 도시 문명의 음울함을 가리키는 선명한 이미지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같이 응모한 작품들도 안정되고 개성이 두드러졌지만, 시에 힘이 너무 들어가 경직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지켜보며 다음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의 집수리'는 눈에 번쩍 띄는 시였다. 꽃핀 산수유나무를 매개로, 자연과 계절의 변화과 순환에 따른 삶의 이치를 시로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봄이 오면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산수유나무도 '집수리'라는 부단한 자기 삶의 갱신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꽃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라고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삶의 시차와 간극을 좁힐 수도 없고 매양 어긋나기만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화를 체감하면서도, 북상하는 꽃소식에 귀 기울이며 봄이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자기 나름의 '남쪽의 집수리'에 골몰하는 인간살이를 적실한 언어로 표현했다. 요란한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의 깊이와 무게를 확보한 좋은 예이다.

최란주 씨의 다른 작품들의 수준도 고르고 높아 치열한 습작의 모습이 엿보였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아도 신뢰할 만했다. 주저 없는 의견일치로 '남쪽의 집수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이태수(시인)·송찬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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