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매일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입력 2020-01-01 06:30:00

생을 건 역주를 기대한다

박기섭 시조 심사위원
박기섭 시조 심사위원

문제는 새로움이다. 늘 처음이면서 또 다른 처음을 꿈꾸는 시! 요컨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다. 낯선 비유, 삐딱한 시각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조는 선험의 형식을 따르는 이 땅 유일의 정형시다. 그렇다고 그 형식에 갇히거나 끌려 다녀서는 낭패다. 형식을 부리되, 작위나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닿아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전제로 응모작들을 읽어갔다. 전국을 망라한 응모자의 지역 분포는 예년과 다를 바 없었으나, 가파른 인구 고령화 탓인지 노년층의 응모 비율이 부쩍 높아졌다. 응모작 전반의 수준은 상향 평준화 추세가 뚜렷했다. 그러면서 사회현실에 직핍한 서정, 자연과 인간의 결속, 역사의식의 표출 같은 퍽 다양한 미학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정독과 숙고의 과정에서 '팔분음표 일어선다'·'꽃총포 쏘아 올린다'·'독거 혹은 풍장'·'슴베를 뽑다'·'폐철선을 들다'·'장사리 서신'·'모란이 오는 저녁' 등이 눈길을 끌었다. '도예'·'거짓말'은 20대의 감각이 신선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메가시티 동굴'·'덧니, 날아가다'·'욱', 그리고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 앞뒤를 가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차피 언어의 건축인 시의 완성도 측면에서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당선작은 얼개와 짜임이 견고한 데다 맞춤한 비유와 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누"에 비유된 두 수녀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들이 물 설고 낯선 땅, 그것도 편견과 비탄의 섬 소록도에 온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스치는 손길에도 부끄럼을 타는" 20대에 와서, "마흔 해"가 넘도록 "제 몸을 풀어"낸 것인가? 그 답은 이 작품의 행간에 오롯하다. "낯선 뱃길" 끝의 "여윈 섬"을 안고, 그 섬의 "병든 사슴 곁에"서 가없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산 것이다. "파도가 일 적마다 파도를 움켜쥐고" "마디 굵은 사투리에" 끊임없이 사랑의 "향기"를 베푼 것이다. "맨 처음 온 그대로 닳지도 않은 비누"가 한결 같은 그들의 정신을 표상한다. 실존 인물의 삶을 좇는 따뜻한 긍정의 시각을 높이 산다. 영예의 당선을 축하하며, 생을 건 역주를 기대한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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