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46권과 신약 27권 등 모두 73권이나 되는 성경은 베스트셀러라고 불릴 만큼 많이 읽히고 있지만, 직접 필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엄청난 양의 성경을 붓으로 쓴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순희(70) 씨는 14년 동안 화선지에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 필사가 끝나는 내년 부활절쯤엔 전시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백 씨는 엄두도 내기 힘든 성경 필사를 왜 시작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이유를 들어봤다.
◆ 2005년부터 필사 시작
백순희 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난다. 세수하고 기도를 한 뒤 방 한켠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먹을 간다. 그리고 붓을 잡고 성경 구절을 써내려간다. "이 시간은 예수님과 마주하는 시간으로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작업시간 동안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평안해진다"고 했다.
백 씨가 성경 필사를 시작한 것은 2005년 11월 20일. 벌써 14년이나 됐다. 가톨릭에 입문하기 위해 교리를 배우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약부터 필사했다. "신약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무슨 말씀을 하신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밥을 챙겨먹듯 성경을 필사했다. 2006·2007년 2년 정도 동생이 있는 필리핀에 갔을 때도, 가끔 아들을 보기 위해 포항을 찾을 때도 성경 필사를 잊지 않았다.
4년 반만인 2009년 7월 11일, 신약 필사를 끝냈다. "당시 풋나기 신자라 신심이 있었나 봐요."
이어 구약 필사를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구약의 끝인 말라기를 쓰고 있다. 내년 부활절쯤엔 끝낼 계획이다.
백 씨는 화선지 전지를 6등분해 사용한다. 한글로 세로로 쓰는데 2시간 정도 쓰면 4장(한 장 230여 자)을 쓴다. 50장이 되면 책으로 묶는다. 백 씨의 방 한켠에는 세로 36cm, 가로 22cm 책 130여 권이 보관돼 있다. 성경 전체를 그대로 옮긴 것도 놀랍지만 화선지에 붓으로 깨끗하고 정갈하게 쓴 한 줄 한 줄, 한 치의 오차나 이지러짐이 없는 줄 간격과 여백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너무 만져 너덜너덜해지고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성경을 보면 백 씨가 그동안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필사를 하면 "말씀 구절구절 곱씹게돼"
백 씨는 성경을 필사하게 되면 그냥 읽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더 곱씹게 된다고 했다. "한 번 쓰는 것이 두세 번 읽는 것만큼 깊이 새기게 되고 얼마나 정성들여 쓰는가에 대해서 깊이도 다르겠지만 다른 필기구보다 붓은 더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는 깊이도 다른 필기구보다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백 씨는 이어 "그냥 글자를 옮겨적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오·탈자 없이 정성을 다해 쓴다. 잘 몰랐던 구절의 뜻을 깨우쳐가며 험한 고비를 인내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 했다.
백 씨는 서예가다. 대구시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할 만큼 서예에 조예가 있고 문인화에도 능하다. 방 곳곳에는 주기도문, 영광송, 성모송과 난과 대나무를 그린 문인화가 걸려 있다.
백 씨는 붓 잡으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고 했다. 펜이 아닌 붓으로 시작한 이유다. 먹물조차도 시중에서 파는 것을 쓰지 않는다. 반드시 본인이 벼루에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들어 쓴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백씨는 가끔 종잇값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주님께 여쭈면 어디선가 돈이 나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다. 진심으로 바라면 반드시 이뤄진다"며 활짝 웃었다.
오래도록 필사하다 보면 팔이 아플 법도 한데, 백 씨는 팔이 아프지 않다고 했다. "성경을 베껴 쓴다고 하면 팔목이 아프거나 눈이 피로하지 않으냐고들 묻는데 2시간 앉아서 써도 전혀 아프지 않다. 성경 쓰는 재미가 더 크다 보니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 오로지 말씀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다 쓰고 나면 허리가 아픈 것을 느낀다"며 싱긋 웃었다.
백 씨는 14년 동안 한번도 붓을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이상하리마치 그시간이 기다려지고 쓰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14년 동안 꼭 한번 쉬었다. "지난 여름 계단에서 굴러 허리를 다쳐 3개월 정도 쉬었다"고 했다.
백 씨는 성경 말씀은 날마다 새롭다고 했다. "여러 번 읽고 썼어도 매번 느껴지는 울림이 다르다"고 했다. 백 씨는 성경을 쓰면서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성경을 쓰면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신약을 쓸 때는 예수님이 제자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가 온몸으로 느껴지고, 구약을 쓰면서는 하느님과 마주앉아 대화하는 기분이다. 성경 필사를 시작한 후 미사도 재밌어졌다. 그냥 지나쳤던 독서나 강론 말씀도 오래 기억나더라고요."

◆ "한문으로 된 성경 필사 도전할터"
백 씨는 힘닿는 데까지 성경 필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성경 필사를 시작할 땐 이렇게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성경 쓰기는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밌다. 나이가 들어서 이전보다 쓰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말씀을 곱씹으며 계속 성경을 쓰고 싶다. 성경 필사는 제게 '은총'이거든요."
백 씨는 손으로 쓰면서 성경을 읽으면 그 자체로 기도가 된다고 했다. "성경을 필사하는 그 시간이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백 씨는 내년 부활절쯤에 구약 필사를 끝내고 한문으로 된 성경을 구해 한자 필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백 씨는 성경필사를 하는 동안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 어떤 변화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성경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하느님 말씀이었다"며 "성경을 써 내려가면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의미를 알게 된 순간 모두가 기적이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이어 "성경필사를 하면서 항상 하느님과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성경필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성경을 다독하는 분도 있고,정독하는 분들도 있다. 한자 한자 쓰는 은혜가 크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신앙의 은혜가 많다. 그것을 쓰는 시간에는 무아지경으로 들어갑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