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매일신춘문예]시 당선소감

입력 2020-01-01 06:30:00

당선인 최선 (본명 최란주) “저의 빈 공간에 꾹, 참았던 한 호흡을 담겠습니다”

최란주 시 당선인
최란주 시 당선인

고향에 가면 저와 나이가 같은 산수유나무가 있습니다. 참 부지런해서 봄에 노랑으로 바쁘고 가을엔 빨강으로 바쁜 그 친구와 해마다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이 노랑으로 시작해서 빨강으로 끝이 나는 동안 저는 한 번도 약속을 성실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지친다는 것은 어딘가 부족했다는 뜻일 겁니다. 당선통보전화를 받는 그 순간에도 최선의 봄과 겨울이 교차하며 지나갔습니다. 지금쯤 고향의 산수유나무는 겨울잠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실눈을 뜨고 저에게 빙그레 웃음을 지어주고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주신 부모님, 부족한 저를 많은 인내심으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과 격려를 해준 남편과 동생들에게도 감사하고, 응원을 해준 문우들과 직장동료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빈곳이 있어 통이 존재하겠지요. 어떤 견고한 진공에도 한 호흡,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앞으로 쓰는 시들이 그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이었으면 합니다. 단 한 줄의 언어가 '그래 맞아 나도 이런 느낌이었어.'라는 공감을 갖게 되길 원합니다. 이제 저의 영혼, 비어있는 공간에 꾹 참고 있는 한 호흡을 담겠습니다.

그리고 동년배인 산수유나무와의 약속을 이제야 지킬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것이 노랑이든 빨강이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매일신문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최선 (본명 최란주)

전남대 법과대학 졸업

현재 서울행정법원 근무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