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문화부장
전국 일간신문들이 2020 신춘문예 작품 접수를 마감하고, 예심 중이거나 예심을 끝냈다. 매일신문도 예심을 마치고 현재 본심 심사 중이다.
최근 5, 6년간 신춘문예 응모작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응모 편수가 완만하지만 증가세를 띤다. 둘째, 응모자의 연령이 점점 높아져 60대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셋째, 청년 응모자들의 작품에서 '반듯한 작품', 다시 말해 '흠도 없지만 매력도 없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신춘문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인 작가 등용문이다. 그래서 응모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노령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사위원 중에는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을 등단하도록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등단한 뒤 오랜 세월 갈고닦으며 더 나은 작품을 써 주기를 기대하는데, 고령의 작가에게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있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글쎄다.
세계 문학판에서 한국문학의 힘은 미미하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낮은 데는 언어와 번역, 출판사의 경영 방식, 국가의 매력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차치하고 작품 자체의 대표적 문제만 꼽자면, 생생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점, 한국문학이 국내 시류에 지나치게 편승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을 쓴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으며, 그리스-터키 전쟁 때는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또 7년간 쿠바 수도 아바나의 암보스문도스호텔에 기거하면서 현지인들과 어울린 덕분에 '노인과 바다'를 더 생생하게 가꿀 수 있었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결혼 적령기 남녀의 이해와 몰이해, 결혼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제인 오스틴은 약혼했지만 남자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에 있어서 돈, 집안, 개인의 성향과 능력 등이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를 그녀는 생생하게 경험했으며, 그런 문제로 오랜 세월 번민했다.
고미카와 준페이의 소설 '인간의 조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중국인에 대한 만행과 전쟁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잔인함을 그려낸 작품이다.
예로 든 작품들은 모두 자국(미국, 영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문학에서도 걸작으로 통한다. 모두 경험 혹은 절절한 고뇌를 바탕으로 썼으며, 어느 작품도 자국 독자 혹은 동시대의 '통념'에 아첨하지 않았다.
한국문학은 어떨까? 경험보다는 독자의 입맛에 맞춘 작품이 많다. 역사 소재 작품들은 인류 보편의 시각이 아니라 한국인의 편에서 쓴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성(性)과 관련한 작품은 '여성=피해자' '남성=가해자'가 대세를 이룬다. 글쓰기 방법을 정식으로 배운 작가는 많은 반면, 전문 분야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쓰는 작가는 드물다. 경험이나 번뇌의 결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경험과 번뇌를 찾아다니는 작가가 수두룩하다. 한국문학이 국내용이자 당대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신춘문예 응모자들의 연령이 높아진다고 한국문학의 고령화를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세상을 살아낸 사람의 절절한 경험과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다면 고령이라도 '젊은 작품'을 써낼 것이고, 경험이나 고민보다는 문학적 장치와 기교로 시류에 편승한다면 젊은 응모자라도 '늙은 작품'을 양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