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자민당을 쳐부수자"

입력 2019-11-25 11:19:22 수정 2019-11-25 18:43:47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당 어떻게 바꿀 것인가… 김세연 선언, 한국당 직면 필연으로 받아들여 부활해야"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이성환 계명대 교수

日 자민당 혁신 통해 살린 고이즈미
정치 변화 원하는 국민 열망에 부응

불출마로 좀비당 해체 촉구 김세연
"새로운 보수 탄생" 한국당도 응답을

1993년 철옹성 같던 일본 자민당이 38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다. 3년 후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여당으로 복귀했으나, 잃어버린 10년의 경제처럼 자민당은 활력을 찾지 못했다. 시대와 공감하지 못하고 민심과 동떨어진 좌충우돌이 계속되면서 내각 지지율은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비주류로 독불장군 취급을 받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중의원 의원이 "자민당을 쳐부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민당의 해체를 주장했다. 자신이 총재가 되어 무기력한 자민당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계파 간 역학관계가 강하게 작용하는 자민당에서 그가 총재가 되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총재 선거를 위한 그의 가두연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환호했다. 당원・당우(黨友·당원이 아닌 당의 지지자)의 지지를 받은 그는 승리했고, 총재가 됐다.

총재로서 총리가 된 후에도 그의 질주는 끝나지 않았다. 자민당의 오랜 관행이었던 파벌 배분형의 각료 임명 방식을 폐기하고 개혁에 대한 의지를 기준으로 장관을 임명했다. 지지부진하던 규제완화와 시장개방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금기시되던 이라크 파병을 단행하고,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회담을 하고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사적 기득권에 매달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소속 의원들에게는 공천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철저히 응징했으며, 각종 선거에서 승리했다.

내각 출범 시 그의 지지율은 85%로 사상 최고치였으며, 지지하지 않는다가 5%였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5%는 그가 자민당 총재이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이유를 들었다.

일본 국민들이 그를 지지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민당을 철저히 쇄신해 정치를 바꾸고 일본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한 것이다. 물론 그는 자민당을 부수지도 않았으며, 일본도 바뀌지 않았다. 임기 중에 단행한 연금법 개정으로 국민 부담이 늘고, 파견업법 개정으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소득격차의 확대로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았으며, 일본 사회를 극우화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으로서 일시적으로나마 자민당 쇄신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냈다.

김세연 국회의원이 자유한국당 해체론을 선언했다. 한국당은 수명을 다한 좀비 정당으로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쇄신을 시도했으나, 새로운 가치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구태의연한 정쟁, 무조건 반대, 여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만을 좇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세연 의원의 의도는 분명하다. 좀비 같은 한국당을 해체하면 새로운 보수 세력이 만들어진다는 논리이다. 많은 국민들과 보수 언론이 공감하고 있으나, 한국당은 시큰둥하다. 식탐만 가득한 좀비로라도 버텨보자는 심산일까.

김세연과 고이즈미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해체를 주장한 공통점이 있으나, 차이도 크다. 김세연은 불출마를 통해 한국당의 해체와 보수 재건의 물꼬가 트이기를 바랐고,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부수기 위해 총재가 되려고 했다. 직접 행동론과 간접 추동론쯤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권력 의지 차이일지 모르나 전자가 파괴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고이즈미는 직접 해체론을 통해 자민당을 살렸다. 김세연의 주장에 답하듯, 한국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에서 50% 물갈이를 제시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당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정해야 거기에 맞는 사람을 충원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연인 듯 필연, 그로 인해 결정적으로 바뀌는 삶을 경험한다. 김세연의 선언이 돌출적 우연이 아니라 한국당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 받아들여질 때 한국당은 살아날 것이다. 이 나라를 위해 새 보수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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