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지소미아 파기 이후?

입력 2019-11-2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2002년 9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영남대에서 강연했다. 한 청중이 "왜 미국에 가지 않느냐. 반미주의자 아니냐"고 물었다. 노 후보는 "바빠서 못 갔다. 미국 한 번 못 갔다고 반미주의자냐"고 되물었다.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자주 외교를 표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2003년 3월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예상을 뒤엎고 노 전 대통령은 비전투병을 이라크에 파병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한 일종의 거래였다"고 했다. 미국에 '반미주의자'로 낙인 찍힌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탈피하려고 미국 요청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 집권 2년 반 동안 망가지고 깨진 것이 숱한데 그중 하나가 한·미 관계다. 한국은 미국 요청을 뿌리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강행할 방침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 6조원을 내놓으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이 방위비 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미국이 협상 결렬을 핑계로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할 것이란 추측이 있던 터여서 예사롭지 않다.

한·미 동맹(同盟)이 흔들리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잘못이 크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돈을 더 내라고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장사꾼' 트럼프 탓에 한국이 골병들게 생겼다. "미군, 갈 테면 가라" 등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크게 확산한 것도 트럼프 탓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역시 한·미 동맹 균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믿음을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청와대는 "미국이 종료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이 우려와 실망을 표시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한·미·일 3국이 연계된 안보 현안인 지소미아를 일본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쓰는 잘못을 저질렀다. 김정은에 경도된 대북 자세도 미국의 신뢰를 잃게 했다. 미국이 대한민국 기둥뿌리를 뒤흔들 카드를 50개 넘게 가졌다고 하는데 지소미아 파기 이후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