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섭의 북한 화첩기행] <6>용악산 법운암

입력 2019-11-22 17:35:37 수정 2019-11-22 17:35:39

용악산 중턱의 암자, 법운암...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백범 김구 선생도 2년간 법운암에서 수행 생활을 했다고

법운암은 낮고 굽은 담장 끝은 벼랑이며 절벽위에 세워져 외부의 침입에서 안전한 요새 같은 암자이다.권용섭 작
법운암은 낮고 굽은 담장 끝은 벼랑이며 절벽위에 세워져 외부의 침입에서 안전한 요새 같은 암자이다.권용섭 작

평양 해방산호텔에서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며 우리 일행은 회의를 했다. 안내원이 "일요일인데 교회에 갈래요, 절에 갈래요"라며 우리의 의견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양자택일이라지만 여간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두 곳 다 궁금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은 탓이었다.

일행은 4명. 논쟁은 길지 않았다. 목소리가 크면 다수의 의견이 되는 법. 우리 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평양을 벗어나 만경대 김일성 고향집을 지났고 어느새 만경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중턱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오르니 '송덕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단청은 없었지만 색이 밝아 눈길을 사로잡은 건물이었다.

만경봉 중턱의
만경봉 중턱의 '송덕정'.2층으로 지어진 송적정에 오르니 굽은 소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2층으로 지어진 송덕정에 올라가니 분재처럼 굽은 소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우리가 걸터앉아 사진도 찍고 그림을 그리던 난간까지 드리워진 소나무의 운치는 풍류 그 자체였다. 송덕정에서 내려다 본 산하와 안개를 품고 있는 평양의 변두리는 우리의 한적한 시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정겨운 풍경은 한 나라, 한 민족임을 느끼게 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그림으로 스케치한 뒤 우리는 다시 용악산이란 곳을 향해 이동했다.

돌로 축성된 통제구역을 통과하고 외길을 오르고 있을 때쯤이었다. 왼쪽에 중국풍 조형물이 있는 연못을 지나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꾸며진 연못에 구름다리, 작은 정자가 있어 관심을 가지고 예쁘다고 했더니 기사는 "늘 다니는 길이라 그냥 지나쳤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차를 후진해 차에서라도 사진을 찍으라며 배려해줬다. 소소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룡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
룡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

연못 끝에는 난데없이 시멘트로 된 용꼬리가 올라와 있었다. 의아해하며 지나갔는데 얼마 뒤 산허리에서 용의 몸통이 보였다. 아마도 연결된 형태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며 한 굽이를 더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용머리가 길가에 버티고 있었다. 산기슭에 커다란 용이 살고 있다는 조형물로 용악산에 얽힌 용의 이야기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용악산을 10분 정도 오르자 암자 같은 사찰이 돌계단 위에 드러났다. '법운암'이었다. 짧지만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머리를 깎은 주지 스님이 마당에서 우리를 기다린 듯 두 손 모아 반기며 인사를 했다.

법운암 스님이 사찰의 내력을 우리 일행에게 설명하고 있다.
법운암 스님이 사찰의 내력을 우리 일행에게 설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심었다는 500년 된 은행나무와 1천년 된 느티나무도 있다 하여 암자 뒤쪽으로 올라가 칠성각과 산신각들을 둘러봤다. 암자 본당의 이끼 낀 기와가 그림 소재로 멋있어 연신 사진을 찍자 스님의 자랑이 따라왔다.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가장 오래 된 이 사찰에 미국놈들이 폭격을 해서 전쟁 때 많이 소실되었다고 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이곳에서 2년간이나 수행을 했다고 덧붙였다. 스님의 말을 듣자니 법운암 안내판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봉건 왕조 초기에 세워진 것이고 조선인들의 소박하고 세련된 건축기술을 보여준다고 기록돼 있었다.

룡악산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룡악산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어느 유적에서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서두는 '위대한 령도자'다. 이곳 법운암 안내판 서두에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력사유적과 유물을 잘 관리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항일여성 영웅 김정숙 동지가...'가 실렸고, 그 뒤에야 '법운암은...' 하고 건물에 대한 설명이 따라온다. 북한 유적 소개의 순서처럼 보였다.

낮고 굽은 담장 끝은 벼랑이고 절벽이라 외부의 침입에서 안전한 요새 같은 암자라 할 만했다. 법운암 옆길로 용악산 정상을 향해 난 오솔길을 올랐다. 바닥에는 예쁜 자갈로 아기자기한 꽃무늬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정상을 오르다가 다소 위험해 보이는 바위 난간이 있었는데 이 바위길에도 수령님께서 어렸을 때 용감히 뛰어넘고 놀던 곳이라는 소개가 빠지지 않았다.

룡악산 송덕앞에서의 필자부부
룡악산 송덕앞에서의 필자부부

아침식사 회의에서 밀려난 교회는 나중에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봉수교회, 칠골교회, 개성교회, 신포교회, 평양신학원(학교)가 있다고 들었다. 국제평화센터라는 이름의 통일교 예배당에는 일본인 선교사가 상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대 예배소를 비롯해 장충성당, 금오성당 등 500군데가 넘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룡악산 문바위에서 부인 여난영씨.
룡악산 문바위에서 부인 여난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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