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수능 샤프

입력 2019-11-12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프로야구 선발 투수에게 등판을 앞둔 하루 이틀은 매우 예민해지는 시기다. 평소의 루틴대로 경기를 준비하는데 동료가 말을 거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 쓰는 선수가 많다.

류현진 선수도 등판이 다가올수록 말수가 점점 더 적어지고 주변에서 일으키는 작은 소음에도 신경 쓸 정도로 예민해진다고 한다. 얼마 전 시즌 도중에 동료 클레이튼 커쇼가 류현진의 등판 날 로커룸에서 의자 끄는 소리를 냈다가 바짝 긴장했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다행히 류현진이 승리해 커쇼도 한시름을 덜었다고 한다.

14일 수능 시험장에서 배부될 샤프 펜슬 교체에 대한 소문으로 일부 수험생들이 술렁댄 것도 같은 경우다. '수능 당일 어떤 샤프를 쓰느냐'는 수험생에게는 민감한 문제여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당국은 부정행위 가능성을 염려해 샤프 제조사나 종류에 대해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수능 수험생에게 소위 '수능 샤프'가 처음 배부된 것은 2006년 수능이다. 2005학년도 수능 때 발생한 '수능폰' 사건의 여파다. 휴대폰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간 광주의 일부 수험생들이 외부에서 정답을 중계하다 적발된 사건으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되고, 일부는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이후 수능 시험장 반입 금지 품목에 모든 전자기기와 개인 필기구가 포함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CI 디자인이 박힌 샤프만 쓰도록 했다.

수능 샤프는 2011학년도 수능만 빼고 13년간 한 업체가 납품해왔다. 자연히 수험생들은 모의고사 등에서 동일한 샤프를 미리 사용해보고 손에 잡히는 감각이나 소리 등에 익숙해지게 된다. 수능만 되면 갑작스레 추워지는 '수능 추위'와 마찬가지로 필기구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평가원의 입장대로 수능 샤프 공개에 따른 부정행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부분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수긍하는 자세다. 아무리 큰 시험이라 하더라도 환경 변화를 이겨내는 것 또한 시험의 한 부분이다. 모두 최선을 다한 수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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