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사는 인구가 비수도권에 사는 인구수를 추월했다. '수도권 세상'이 활짝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8%를 차지하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국민의 50% 이상이 산다. 수도권 인구는 매월 9천500명씩 불어나고 비수도권 인구는 3천500명씩 줄어든다. 지난해 대구에서 1만 명이, 경북은 더 많은 1만1천 명이 수도권으로 갔다.
인구가 늘면 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수도권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지방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지역균형발전은 더 멀어졌다. 2013년 75곳이던 30년 내 소멸 위험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89곳으로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꿰뚫고 있다. 재빨리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18년 2월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했던 말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공을 들였고 또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집권을 우리나라 지역불균형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이 노 정부였다. 그 결과 세종 행정수도가 나왔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53개를 비수도권 11개 지역에 이전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노 정부를 거치며 수도권에 몰리던 인구가 2011년과 2013~2016년 지방으로 순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9일 반환점을 돌았다. 노 정부를 계승해 그보다 더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선언했으니 기대가 컸던 정부다. 하지만 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은 노 정부와 달리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달콤한 약속에 걸었던 지방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물론 문 정부가 그동안 고사 위기에 몰린 지방을 살리기 위한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한다며 취임 초 지방분권 개헌안을 제시한 적도 있다. 자치분권의 근간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정부의 571개 사무를 지자체로 이양하는 지방이양 일괄법 개정안, 자치경찰제 실시를 위한 경찰법 개정안 등 소위 '자치분권 3법'을 국회에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법안만 올리고선 야당 탓만 할 뿐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30%가 안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중앙집권은 더 강화됐고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해졌다.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에 더 예속됐다. 선심성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재정 부담은 지방이 떠안는다. 복지확대 정책 사업 예산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가 해마다 지자체에 지급하는 지방교부세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보조 사업에 의무적으로 매칭하는데 쓰인다.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됐다. 최저임금에 대해 지역별로 차등을 둬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 묵살됐다.
반면 수도권 집중 기반을 다지는데는 거리낌이 없다. 지난달 말 대도시권 광역교통비전 2030계획을 발표했다. 대도시권이란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실상은 광역급행철도 건설 등 수도권 도시의 광역거점 간 통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안이다. 수도권에 30만 호의 3기 신도시를 만들 계획도 나와 있다. 역시 수도권에 120조원을 쏟아부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허용한 것도 문 정부가 한 일이다.
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즐겨 말하지만 실천은 않고 있다. 추진 의지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이러고도 지방분권을 말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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