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개도국 특권 포기를 보며

입력 2019-11-13 11:05:55 수정 2019-11-13 18:41:41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한국 경제 위상에 어쩔 수 없다지만
농민과 소통 없이 일방적 결정 곤란

침체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 대전환 필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특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발표에 농촌이 들끓고 있다. 개도국 특혜의 포기는 농업 포기로 생각한다. 농민 단체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고 전국적인 항의가 지속된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등 가축질병 발생으로 농촌 경제가 매우 침체돼 있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 과정에 농민과 소통이나 설득 부족도 지적받는다. 개도국은 경제 규모나 사회제도, 국가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기 때문에 국제협상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특별 대우 중 중요한 것은 관세와 보조금 감축에서의 우대다. 개도국은 선진국 의무의 3분의 2만 이행하면 된다. 1995년 출범한 WTO 체제에서 선진국은 관세를 6년간 36%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10년에 걸쳐 24%를 감축한다. 국내 보조금의 경우 선진국은 6년간 20%를 감축하나 개도국은 10년간 13.3%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해 감축률은 적게 하고 감축 기간은 길게 잡아주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우리 경제는 GDP 규모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국가로 국제 위상이 높아졌다. 우리는 OECD 가입국이고 G20 회원국이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만2천56달러가 넘는 고소득 국가이며 지난해 우리는 3만달러를 넘었다. 무역 규모도 2018년 기준으로 수출이 3%, 수입이 2.8%로 세계 상품무역이 0.5%를 훌쩍 넘는 국가다.

WTO에서 우리의 개도국 특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고, 우리보다 못한 국가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가 개도국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현재의 관세나 보조금 감축에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협상부터 적용된다. 당장에는 대비할 시간이 많고 그 기간 안에 근본적인 농업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포기해야 할 개도국 지위이다. 국제적 위상, 국내 경제 상황, 차기 협상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가 어렵다.

OECD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필자가 OECD에 근무할 때이다.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OECD는 '선진국이 가입하는 클럽'인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 되느냐? 특정 산업(농업)을 개도국으로 취급하면서 OECD에 가입하기는 어렵다는 사무국 관계자들과 많은 논쟁을 하면서 어렵게 관철시켰다.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25년이 지나 우리 경제의 국내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브라질, 싱가포르 등도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만, 개도국 특혜 주장이 당장에는 득(得)이 없고 실(失)은 클 수 있다는 판단은 위험하다. 차기 협상에 변수가 많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결 구도로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개도국 지위 포기의 시기나 방법도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경쟁력 제고 대책의 실효성도 의심된다. 국회에 제출한 2020년 농업 부문 예산은 15조3천억원 수준이다. 전체 예산(513조5천억원)의 2.9% 수준으로 지난해 3.1%에 비해 줄었다. 최근 6년 내의 최저 수준이다. 농업경쟁력 제고 대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공허하게 들린다.

당장 시급한 '공익형 직불제'라도 조기 시행해야 한다. 차기 협상에서 감축될 가능성이 없고 WTO가 허용하는 제도이다. 지급상한도 없고 가격에 관계없이 일정 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중 직불금 예산도 2조2천억원 수준이다. 지난해의 1조4천억원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났다. 농업 직불금의 81%가 쌀에 집중되어 쌀 공급 과잉을 야기한다. 타 작물과의 균형을 취하고 농가별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익형 직불제' 시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주자.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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