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가 세상을 떠났다. 14살 7개월. 가족들이 유기견 보호소에서 7개월령에 데려왔고 정확히 14년의 시간을 함께 살았다. 델리는 최근 심장병으로 몇차례 입원 치료를 받다가 며칠 전 부터는 건강이 악화되어 호스피스 관리 중 가족들이 델리에게 안락사를 시켜주기로 결정하셨다.
같은 시간 대기실에는 마음이라는 강아지를 입양하신 가족들이 와 계셨다. 시골 텃밭에서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가 사라지자 서둘러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새끼들을 나누어 입양을 했다 하셨다.
이별을 맞이하는 가족과 새 가족을 맞이하는 가족 간의 묘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에 도쿄에 있는 동물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본 도심의 특성 상 대기실은 좁았으며 동물환자들이 늘 붐볐었다. 특이한 점은 좁은 대기실 한켠에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중년의 부부가 사진을 어루만지시며 추모하고 게셨다. 두분이 담담하게 그리움을 전하고서는 옆에 있던 다른 보호자들과 자연스레 대화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동물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죽음을 감추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진 나로서는 동물병원 한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이 충격적이었으며 죽음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델리를 안고 처음 내원했던 꼬마숙녀는 이제 아기 안은 엄마가 되어 델리와의 마지막 이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병원에 잔잔히 울려퍼졌다. 경향 없을 와중에 델리 가족들이 마음이를 안아주며 마음이 가족에게 말을 건내셨다.
델리가 처음 왔을 때의 에피소드, 어떻게 해야 대소변을 가리는지, 예방접종, 심장사상충과 외부기생충 예방, 목욕과 귀관리, 양치 관리, 나이가 들면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고, 너무 잘 먹이려다 결석 수술을 받아야 했던 사연들을 일러주셨다.
델리 가족들은 마음이를 안으면서 위로받으셨고, 마음이 가족들은 동물의 전 생애를 실감하며 서로를 도닥여 주시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마음이를 검사한 결과 기생충 감염이 심했고 영양이 결핍되어 있었다. 마음이는 어미에게 버려진 후 가장 위험한 시기에 다행스럽게 입양되었다.
주변에 발견되는 유기동물의 수 보다 수십 배 많은 생명들이 길거리에서 태어나고 사망한다.
유기동물이 급증한 근본 원인은 마당개라 하여 개와 고양이를 풀어 키우던 문화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에게 자유를 베푼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책임감이 부족하다.
대도시는 "유기동물 구조사업"과 "길냥이 TNR(중성화수술 후 서식지로 돌려보내기)사업"을 통해 유기동물 개체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예산이 부족한 중소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집행할 여력 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도심 외곽지나 읍면에는 들개로 인한 인명사고, 들고양이로 인한 생태계를 교란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유기동물 개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하고 시골이라 하더라도 개와 고양이는 동물등록과 중성화수술을 의무화 시킬 필요성이 있다.

현행 유기동물 구조사업은 의무 보호기간(10~20일)이 종료되면 동물들을 안락사시켜야 하는 냉정한 제도이다. 그나마 어리고 순한 개체들은 입양이 원활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고 질병이 있는 개체들은 입양되지 못하고 안락사 되어진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든 유기동물을 평생 돌볼 수 도 없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할 때 유기동물을 입양한다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선행이자 국가를 대신하는 봉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가족들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으며 국가는 이러한 입양 문화를 적극 장려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반려문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반려문화가 일상화된 이유는 생명을 보살피는 정서적 위안이 시대정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유기동물을 입양하였을 때 국민 호감도가 상승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9년 보신문화를 척결하는 동물공존 도시를 선포하였다.
선진국에서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감성 문화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이미 광고와 미디어, 소셜네트워크의 핵심 소재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반려동물산업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반려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병폐들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개물림사고, 개짖음 분쟁, 비매너 반려인으로 인한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반려문화를 교통질서와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다.
교통 법규 위반에 대하여는 엄격한 처벌이 주어지고, 국가는 어린이와 보행자에게도 교통도덕을 교육하고 홍보하면서 교통질서를 확립시켜나간다.
반려인이 동물등록과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고 펫티켓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엄격한 처벌이 주어져야 한다. 국가는 어린이와 비반려인에게도 펫티켓을 홍보하여야 바람직한 반려문화를 유도해나갈 수 있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펫티켓과 낯선개를 만났을 때 행동할 안전수칙들을 교통 법규를 가르치듯이 어린이 소양 교육에 포함시키고 있다.
대구시는 물의 도시, 생태 도시, 동물 공존 도시를 표명하고 있다.
열악한 달성동물원을 이전하고, 반려동물테마파크 짓고, 칠성시장 개고기시장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며 결과물이 없다.
대구는 영남 지역의 대표 도시로서 반려동물문화 정책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문화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 구성은 타 대도시 대비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대구시가 반려동물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을까 의문스러워 지는 대목이다.
대구시가 환경과 생태계를 존중하는 도시임를 내세우려면 기본적으로 생명을 배려하는 철학이 스며져 있어야 한다. 좋은 이미지를 과시하는 이면에 부끄러운 자화상이 감춰져 있는지 고민해봤으면 한다.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원들이 유기동물에 관심을 갖고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모범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렇다고 동물 입양을 의무감이나 즉흥적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이미 버림 받은 동물이 재 파향 당하는 시련을 겪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날이 차갑다. 겨울은 유기동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이다.Don't Buy. Adopt. 사지 말고 입양하는 문화가 더 많이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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