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합천 매화산 & 해인사

입력 2019-11-06 18:00:00

불의 기운 강하다는 매화산, 불꽃바위들이 이어가는 능선 장관
홍류동계곡 소리길... 물소리, 바람소리로 세속 잡소리 씻어
한국을 사랑한 프랑스 대사, 로제 샹바르의 이야기가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형식 아닌 본질을 보라'

매화산 능선을 따라 전시된 조각품처럼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솟은 기암이 주변으로 완연한 단풍과 조화를 이룬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매화산 능선을 따라 전시된 조각품처럼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솟은 기암이 주변으로 완연한 단풍과 조화를 이룬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나무가 크면 그늘도 넓다. 좋은 산 하나는 주변을 먹여 살린다. 가야산, 황매산, 매화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은 밭뙈기 한 뼘 늘리기 어려웠던 경남 합천을 건사했다.

합천을 알린 팔할은 해인사다. 해인사를 입에 올릴 때면 관용구처럼 '합천'이 먼저 나온다. 해인사 가는 길, 홍류동계곡 소리길은 가을철 명의(名醫)다. 알록달록한 진정제로 보이지 않는 화병을 완화한다. 눈 뜨고 귀 열었더니 마음이 풀리고, 바뀐다. 더러 완치돼 나간다.

◆매화산

매화산이라니, 봄에는 벚꽃천지인가 싶지만 틀렸다. 합천에서 벚꽃을 보려면 합천호로 가야한다. 그 매화(梅花)가 아니다. 불을 묻은 산, 매화(埋火)산이다. 화산 폭발 기록은 없다. 불꽃이 이는 듯 도열한 기암에서 이름을 짐작할 뿐이다. 화기(火氣)가 있다는 의심이다. 그 기운을 막으려 매년 단오마다 이곳 정상에 소금을 묻는다. 불꽃같은 남산제일봉이다. 해인사에서 바로 보인다. 이런 의식을 치르면서 해인사에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매화산 등산의 정석이라는 청량동 탐방로를 택했다. 국립공원공단이 관리한다. 입장료(성인 3천원)가 있단 소리다. 왜일까. 가야산에 묶인다. 해인사로 갈 때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으니 본전 생각나면 해인사까지 다녀올 일이다.

천 개의 불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매화산은 가야산 만물상과 또 다른 분위기로 산행객들을 불러들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천 개의 불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매화산은 가야산 만물상과 또 다른 분위기로 산행객들을 불러들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입장료를 내고 고개를 들면 곧장 닿을 듯한 거리에 고딕풍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돌기둥 모양이다. 1시간 뒤에 안 사실이지만 불꽃기둥들은 가까이서 봐도 장관이다. 그 장관을 보겠다고 등산객들이 열나게 찾는다.

등산마니아들의 비공식 경력 인증표,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는 없는 산이다. 아웃도어업체가 꼽은 100대 명산에 일절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런데도 등산마니아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산이다. 천불산이라고도 불린다. 천 개의 불상이 있다는 뜻이다. 산을 아무리 올라도 사찰은커녕 터도 없다. 불꽃처럼 솟은 바위 하나하나가 불상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상까지 산행은 난이도 '보통'에서 시작해 '어려움'으로 마무리된다. 국립공원공단이 표시해준 난이도는 거의 정확하다. 매일 산봉우리 하나씩 씹어 먹는, 정상까지 가뿐하게 '쩐'하고 다녀오는 실력이라면 귓등으로 넘겨도 된다. 2.2km 산행길에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축지법을 쓸 줄 알더라도 아껴둘 일이다. 천천히 오를수록 많이 본다. 골짜기 사이로 터져 내리는 매력도 흘려버리지 않는다. 허벅지와 장딴지의 지루한 조합은 마침내 절경을 선물한다. 청량동 탐방로 입구에서 1시간쯤 오르자 열리는 새 세상이다.

매화산 능선을 따라 불꽃처럼, 혹은 불상처럼 보이는 기암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매화산 능선을 따라 불꽃처럼, 혹은 불상처럼 보이는 기암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성주에서 올라 보는 가야산 만물상과 다르다. 만물상이 거대한 암석 능선을 따라 보여주는 만물이라면 이곳은 한 모둠씩 흩어져있는 그림과 조각이다. 대형 미술관에 띄엄띄엄 작품이 걸린 듯하다.

질감도 독특하다. 서양미술의 야수파, 인상파, 입체파 화법이 여기서 왔나 싶다. 선이 굵고 입체적이다. 얼핏 보면 다들 비슷하게 생긴데다 남근석 무더기라 해도 고개 끄덕일 만큼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 천지다. 가까이서 보면 제각기 희한하게 생긴 돌무더기다. 조각 작품처럼 이름이 따로 있을 법한데 표지판 하나 없다. 웬만한 산들의 선례를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거, 왜, 엄지손가락 세운 것처럼 생긴 바위 있잖아. 그래, 좋아요처럼 생긴 거 그거"라는 지칭으로 의사소통하는 곳이 매화산이다.

매화산 불꽃바위 가운데 홀로 자라있는 소나무 한 그루. 멀리 뒤쪽으로 붉고 노랗게 달궈진 단풍이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매화산 불꽃바위 가운데 홀로 자라있는 소나무 한 그루. 멀리 뒤쪽으로 붉고 노랗게 달궈진 단풍이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절정에 이른 단풍은 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에 따라 색깔을 바꾼다. 압생트에 진탕 취한 빈센트 반 고흐의 눈이 아니어도 단풍은 샛노랗고 새빨갛다. 아니, 매화산이 나무에 원색의 물감을 조금씩 짜 넣어주고 있을지도.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의 기록이 눈에 띈다. '경상도에는 암석으로 된 화산(바위로 된 봉우리가 불꽃처럼 솟은 산)이 없다. 합천의 가야산만이 바위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졌다. 뾰족한 돌이 불꽃같으며 공중에 솟아서 극히 높고 수려하다.'

매화산에 올라 가을 단풍으로 익어가는 가야산을 보는 건 덤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매화산 남산제일봉(해발고도 1010m)에 오르자 가야산 상왕봉(해발고도 1430m)이 널따랗게 보인다. 가야산에 안겨있는 해인사도 한눈에 들어온다. 흘러내리는 계곡물도 붉어 보인다는 홍류동계곡이 손에 잡히는 거리다.

◆홍류동계곡 소리길

홍류동계곡을 따라 산길과 목재데크길이 갈마드는 소리길을 탐방객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홍류동계곡을 따라 산길과 목재데크길이 갈마드는 소리길을 탐방객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합천 해인사'라 말해도 이의가 없는 건 순전히 홍류동계곡 덕분이다. 만물상 가는 산행이 성주 백운동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해인사 가는 길은 홍류동계곡과 연결된다. 홍류동계곡은 '소리길'이라는 '우리 생의 좋은 길'과 붙어 있다. 해인사 주차장까지 곧장 직행하면 '소리길'의 3분의 1을 뭉텅 날리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소리길'은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영산교까지 7.2km 길이다. 대장경테마파크를 출발점으로 삼기보다 황산주차장에 차를 대고 출발하는 편이 낫다. 가을에는 황금들녘을 보며 걸어도 좋지만 다른 계절의 황량한 들판은 그저 시골길이다.

시작점을 놓쳤다고 가슴 칠 일은 아니다. 해인사 주차장 매표소에서 걷기 시작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입장료와 주차료를 내고 차를 고이 모셔둬야 하니 그렇게들 간다. 사람 보는 눈이 비슷한지 매표소에서 영산교까지 이어지는 2.2km 구간에 행락객이 가장 많이 몰렸다.

용의 비늘이 널려있는 듯 보이는 작은 바위들 사이로 용문폭포의 폭포수가 떨어져 내린다. 가을 단풍이 노랗게 어울리면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용의 비늘이 널려있는 듯 보이는 작은 바위들 사이로 용문폭포의 폭포수가 떨어져 내린다. 가을 단풍이 노랗게 어울리면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소리길의 '소리(蘇利)'는 '이로운 것을 깨닫다'로 풀이한다. 불가에서는 이로운 것을 깨달아 극락으로 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치환하면 '소리길=극락 가는 길'인 셈이다. '소리'라는 음만 듣자면 물소리와 새소리, 숲소리 등 다양한 소리라는 중의성도 갖는다. 중심에 있는 홍류동계곡 역시 '붉게 흐른다'는 이름에 걸맞은 가을색을 뽐낸다. 봄에는 진달래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길이 일품이란 유래다. 소리길은 가을에 걸으라며, 권고가 아니라 명령에 가깝게 말하는 이유다.

길상암이 지척인 낙화담에 이르면 소리길은 절정에 이른다. 낙화담,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선녀탕과 비슷하지만 보다 낭만적인 이름이다. 못에 떨어진 꽃잎이 쉽게 떠나지 못한다는 낙화담에는 실제로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해 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대사 로제 샹바르의 이야기다.

1959년 우리나라에 왔다 10년간 머물렀던 그는 이곳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고고학자이자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했고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해인사를 잊지 못했다는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유골을 소리길에 뿌려달라고 당부했는데 1982년 5월, 78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유해가 홍류동계곡에 뿌려졌다고 한다.

◆해인사

소리길을 걸으며 땀, 근심 빼내고 맑은 정신 앞세워 해인사로 향한다. 일주문에서 봉황문으로 가는 길 양쪽에 선 노목의 호위를 받는다. 사천왕 역할인가 싶을 만큼 거대하다. 허투루 보고 넘길 굵기가 아니다. 오랜 세월 버티기만 해 힘을 잃은 노거수도 아니다. 아직 쌩쌩하다는 걸 입증하듯 잎의 가을색이 화려하다.

개중에는 해인사 창건 기념식수 느티나무도 있다. 해인사 창건은 신라 애장왕의 왕비가 난치병에서 완쾌된 것과 관련 있다. 순응,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왕비의 난치병이 나았고 왕은 이곳에 사찰 창건을 허락한다. 서기 802년이었다. 생로병사의 이치가 담긴 나무인지 1945년 죽어 고사목으로 남아있다.

소리길을 지나 해인사로 올라 가는 길도 진한 단풍이 일품이다. 급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이라 남녀노소 오랜 기간 휴식처로 삼아온 길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소리길을 지나 해인사로 올라 가는 길도 진한 단풍이 일품이다. 급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이라 남녀노소 오랜 기간 휴식처로 삼아온 길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해인사가 이름을 떨친 건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부터다. 팔만대장경을 품으면서다. 법보사찰이란 명성이 시작된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인 불보(佛寶), 승보(僧寶), 법보(法寶) 중 '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명한다'는 법보다.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돼 있는 장경판전은 해인사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보통 문화재가 아니다보니 갖가지 보안시설과 수호자들이 두 눈 크게 뜨고 관람객을 지켜본다. 경판의 수가 8만 1350판(장경판전 입구 표석 기준)에 이른다. 대장경판 한 장의 무게가 약 3㎏이니 전체 무게도 240t을 넘는다.

해인사에서는 성철 스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입적하기까지 해인사 대적광전과 떨어져 있는 백련암에 머물렀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고 돌아나가는 이들이 해인사 본전 앞을 지나가고 있다. 대비로전과 대적광전이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고 돌아나가는 이들이 해인사 본전 앞을 지나가고 있다. 대비로전과 대적광전이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법어로 유명한 스님은 한 언론에 이 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산과 산, 물과 물이 각각 뚜렷하다는 것은, 깨끗한 거울 가운데 붉은 것이 있으면 붉은 것이 그대로 비치고 푸른 것이 있으면 푸른 것이 그대로 비치고, 산을 비추면 산이 그대로 비치고 물을 비추면 물이 그대로 비치어서 조금도 착오 없이 바로 비치는 것을 말합니다.'

형식이 아닌 본질로 대하라는 가르침으로 풀이된다. 17세 나이에 해인사로 들어가 출가한 스님은 팔공산과도 연이 있다. 파계사 성전암에서 눕지 않고 앉은 채로 수행한다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8년간 이어가기도 했다.

해인사에서 나오는 길에 보니 웅장하게 뻗어있던 전나무가 사라지고 없었다. 천연기념물이던 학사대 전나무가 있던 자리는 둥치와 뿌리가 남아있는 듯했지만 휑한 기운은 어쩔 수 없었다. 태풍 링링이 몰고 온 강풍에 지난 9월 부러진 것이었다. 수령 26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던 나무는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지은 작은 정자인 '학사대'에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있어 '최치원 나무'라 불리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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