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평의 귀촌한담] 한 끼 식사

입력 2019-10-30 18:00:00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텃밭 정구지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잘도 올라온다. 여기저기 심었더니 동네 나눠 먹고도 남는다. 보드라운 것으로 밑동까지 싹 잘라서 바구니에 담는다. 돌담 밑에 확 번진 미나리는 동네 할머니 작품이다. 삼 년 전 미나리 뿌리 자른 것을 가져다가 우리 집 담장 밑에 심어 준 덕분이다. 산골 미나리라서 향기가 그윽하다. 이것도 한줌 잘라서 소쿠리에 담는다. 늦가을 고추밭에서 빨간 고추, 푸른 고추 한 개씩을 딴다.

오늘은 정구지 미나리 부침개를 만들어 먹을 거다. 부침가루를 물에 개고 정구지, 미나리, 고추를 설겅설겅 썰어 넣고 천일염을 손바닥으로 대충 부숴 소금 간을 한다. 돼지고기도 얇게 썰어 다져서 조금 넣어본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 두르고 반죽 한 국자 부으니 부침개가 된다. 산골 부침개가 참으로 맛있다.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정한 사랑은 없다'는 버나드쇼의 멘트가 쟁쟁하다. 귀촌인의 한 끼 식사가 참으로 번거롭다. 음식은커녕 설거지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귀촌을 하다 보니 밥하고 치우는 일이 참으로 어설프다. 아내의 일과를 우습게 알았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 시골에 안 오겠다는 아내를 억지로 모셔올 수도 없으니 나 홀로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에 집 안팎 청소까지 다해야 한다. 한 끼 식사 제대로 먹고 치우려면 꼬박 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일이 서툴다 보니 피곤함이 가중된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 먹는 밥이 식당 밥보다 맛있을 때가 많다.

미인 소박은 있어도 음식 소박은 없다는 말에 혼자 웃는다. 한 끼 식사 해먹는 그 시간을 아껴 보았자 큰 소용도 없는 귀촌 생활이다. 이 나이에 도시에 살아봤자, 눈칫밥이나 먹고 차 한잔, 당구 한 게임 비용도 신경 써야 할 터이다. 소음, 먼지 걱정하면서 지인들 만나 골치 아픈 세상 얘기로 스트레스 받으면 화나고 무기력해질 것 같다. 물론 자기 위안을 받으려고 혼자 쓰는 각본이다. 나를 본다. 지금 내 귀촌 생활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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