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이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면서 전쟁을 향해 치닫던 1933년 8월 9일 일본 정부는 '관동방공대연습'이란 방공훈련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를 두고 시나노마이니치신문(信濃每日新聞)의 주필 기류 유유(桐生悠悠)는 '관동방공대연습을 비웃는다'는 사설을 통해 방공훈련의 무용성을 통렬히 비판했다.
"적의 비행기가 일본 상공에 오는 상태가 된다면 그거야말로 일본군의 대패일 것이다. 종이와 나무로만 이뤄진 도쿄 거리는 불꽃을 탁탁 튀기며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실전(實戰)이 앞으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고…이런 가공적인 연습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상이 간다."
이 글로 유유는 일본 군부의 분노를 사 주필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패'라는 유유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1944년 말부터 미국의 B-29 폭격기는 일본 상공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일본 전역을 초토화시켰고,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은 사실상 정지됐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전혀 몰랐다. 일본 군부가 언론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유유의 사설이 나온 지 한 달 뒤 일본 정부는 이미 '개악'한 신문지법에 이어 출판사법까지 개악했다. 이를 이용해 일본 군부는 철저히 국민을 속였다. 그 결과 일본의 패배는 돌이킬 수 없게 됐는데도 일본 국민은 황군(皇軍)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만약 일본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전 여론의 형성으로 태평양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곡해서 (기사를) 쓰면 패가망신하는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어떤 언론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지 누가 판단하나? 혹시 박 시장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 전 장관의 비리 의혹은 언론의 추적 취재가 아니었으면 드러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 시장의 말은 이런 언론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기류 유유의 입을 틀어막은 일본 군부와 다를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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