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 증진의 공으로 ‘자랑스러운 도민상’ 본상 수상
박 대표 “내 가족이 타는 버스로 인식해 지역사회 보탬될 것”
"인생 절반을 시내버스와 함께 해오니 그 노력이 오늘의 영광을 얻은 것 같습니다."
지난 24일 경북 청송군 청송읍 청송버스정류장. 차고지를 가로질러 2층 사무실로 들어서니 흰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올린 중년의 남성이 컴퓨터로 버스 배차 현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청송버스㈜ 박현식(59) 대표이사였다.
박 대표는 앞서 23일 경주에서 열린 경북도민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러운 도민상' 본상을 수상했다. 경북도는 그가 지역사회복지 증진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평가했다.
1991년 객지에서 무역업을 하던 그가 고향인 청송의 청송버스에 스카우트 돼 귀향하게 됐다. 이 회사는 30대 초반이었던 그에게 계장까지 부여한 것이다. 당시 버스기사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큰 형이나 삼촌뻘이었다. 그들에게는 박 대표가 솜털이 뽀송한 애송이 정도밖에 취급되지 않았다.
전국 깡촌 중 하나인 청송출신이 객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끈기와 사교성이 있어야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험지를 다니며 이 두 가지를 잘 활용해 사람들을 사귀고 그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이런 그의 장기를 버스기사들에게도 십분 발휘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기사들이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큰 차를 모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야성의 기질이 있다"며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 근면성을 보이고 무엇이든 함께 도우려고 노력하니 딱딱했던 그들의 마음에 내 진심이 전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8년 동안 계장을 시작으로 과장, 부장, 이사, 전무이사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오늘의 대표이사까지 오르게 됐다. 그는 버스와 반평생을 함께 해 오다보니 다양한 일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주왕산셔틀버스 운행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며 "처음 500원을 받고 시작하다가 5년 전부터는 무료로 운행하니 관광객들에게 지금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2002년 민주노총이 이 지역으로 들어온 뒤 버스기사들에게 파업을 유도했고 당시 그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며 버스운행을 재개시켰다"며 "그 이후 16년 동안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곳이 여기며 그 만큼 모든 걸 공개하고 늘 소통하는 회사가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타지에 나갈 때 승용차보다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버스를 타면서 그들이 운영하는 방식을 배우고 기사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주 친절교육을 하지만 경상도 남자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은 아직도 어색할 때가 많다"며 "대부분 연세가 많은 분들이 승객이다 보니 버스 안에서 실례를 하시거나 실수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기사분들이 화장실까지 모셔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 무척이나 고맙고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청송버스는 내 가족을 태우는 버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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