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가을의 행복

입력 2019-10-23 14:48:15 수정 2019-10-23 15:50:44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가을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공기는 맑고 쾌청하다.

산뜻한 가을 하늘 아래 선남선녀 모두 행복해지려고 한다. 단풍 여행을 떠나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들꽃 같은 미소를 보내며 행복해한다.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가진 것을 물들이고 덜어내듯 떠나는 사람들도 몸과 마음에 무거운 짐들을 덜어내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피어난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나만 생각하고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나와 인연 맺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달빛과 햇볕이 만물을 위하여 에너지가 되듯이 가족과 이웃을 위하는 선행이 내 행복으로 이어진다.

슈만의 '추억'과 신영옥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노래를 들으며 황금 들녘을 산책한다.

20대 후반, 해인사 승가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계룡산 남매탑 전설을 책에서 읽고 붉은 옷으로 물드는 가을에 산으로 갔다. 나도 그와 같은 올곧은 선사가 되고자 그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소원을 적어 남매탑 어딘가에 끼워 넣어 놓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어느 날 밤 젊은 스님 한 분이 계룡산에서 수도하던 중 목에 뼈가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호랑이를 구해준다. 며칠 뒤 호랑이는 보은의 의미로 젊은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갔다. 스님은 혼절한 처녀를 잘 보살펴 깨어나게 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처녀가 상주에 사는 대갓집 따님으로 결혼 초야에 소피를 보려고 밖에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업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을 상주 집으로 데려다주고자 하였으나 여인은 한사코 거부했다. 자기는 아직 신방을 치르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스님의 손길을 받아 생명을 건졌으니 스님의 여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돌아가지 않자 스님은 고심 끝에 수도승으로서 결혼할 수 없는 몸이니 남매의 연을 맺자는 제안을 했고 처녀는 받아들인다. 둘은 부부가 아닌 오누이의 인연을 맺고 지금의 남매탑 자리에 청량암을 지었다. 둘은 수도에 정진하여 나란히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둘이 입적한 뒤에 후세 사람들이 아름다운 신앙을 찬탄하는 의미로 탑을 세웠다. 바로 남매탑이다. 아직도 젊은 시절에 남매탑을 답사한 감동이 크다. 그때 종이에 소원을 적어 탑에 끼워 넣었는데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지 그 소원을 이룰 뻔했다.

봄에는 마곡사, 가을은 갑사가 아름다워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갑사 계곡 진입로와 일주문까지 2㎞(5리)구간은 '5리 숲길'이라 한다. 오리 숲길은 오래된 느티나무, 팽나무, 단풍나무로 터널을 이룬다.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의 환상적인 사랑을 받는다.

만추(晩秋)에 접어들면 고창 선운사의 붉은 단풍도 도솔천에서 도솔암까지 그 아름다움은 천상을 거니는 듯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선운사 옆의 문수사 단풍나무 숲도 숨겨진 보석이다. 문수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단풍나무 숲이 있는 곳이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이 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한다. 둘레가 3m도 넘는 노거수 단풍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인상적이다. 단풍과 낙엽이 보기 좋다고 하지만 가을을 다 말하지 못한다.

괴테와 퇴계 이황의 사색의 길처럼 그리움의 계절 자연으로 떠나라. 자연에는 위로와 쉼 그리고 자유와 치유가 있다. 삶에 지친 사람은 잠시라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드덕거리지 않으려면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비워야 한다.

가을은 결실과 성찰의 계절이다. 이 가을 자연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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