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망친 루푸스(Lupus)병, "딸의 미래마저 앗아가지는 말아다오"

입력 2019-10-21 13:25:20 수정 2019-10-21 22:09:26

초등학생 딸을 둔 연주 씨 사연 '희귀병으로 포기한 삶'

20년 넘게 전신홍반루푸스 병을 앓는 박연주(35·가명) 씨는 특히 신장과 관절염이 심하다. 연주 씨의 오른팔은 장기투석으로 부풀어오르고 곳곳에 흉터가 가득하다. 이주형 기자.
20년 넘게 전신홍반루푸스 병을 앓는 박연주(35·가명) 씨는 특히 신장과 관절염이 심하다. 연주 씨의 오른팔은 장기투석으로 부풀어오르고 곳곳에 흉터가 가득하다. 이주형 기자.

자가 면역질환인 루푸스(Lupus) 병을 앓다 신장이 망가져 버린 한 부모 가장 박연주(가명·35) 씨는 오늘도 딸을 위해 배달 음식을 시켰다. 요리는커녕 집 밖으로 잠시 잠깐 외출을 하기도 버거울 만큼 약하지만 먹성 좋은 딸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 많아 어쩔 수가 없다.

연주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루푸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열이 나더니 급기야 두드러기가 얼굴 전체에 나비모양으로 퍼졌다. 감기약을 먹으며 견디던 그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전신홍반루푸스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 희귀병 앓다 출산으로 몸 다 망가져

20년이 넘는 투병생활은 연주 씨의 팔을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만들고 투석 흉터만 가득 남겼다. 그는 현재는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생활고에 정작 이식 비용도 마련하지 못할 처지다.

이 병은 면역세포가 오히려 자기 몸을 공격하면서 피부, 관절, 혈액, 신장 등 신체의 다양한 기관을 침범하는 자가 면역질환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도 완치방법도 없는 희귀질환으로, 연주 씨는 특히 관절염과 피부발진 신부전증을 다년 간 앓고 있다.

루푸스 병은 외모에 한창 민감한 사춘기 소녀에게는 특히 더 가혹했다. 잦은 입원에 수업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검게 변한 얼굴과 몸은 활발했던 그를 점점 겉돌게 했다. 연주 씨는 결국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사회로 나왔다. 그는 "가정형편이 워낙 어렵다보니 저 때문에 집안이 휘청거렸다"라며 "불치병이라는 말에 당시에는 하루라도 일찍 돈을 벌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일을 하다가 여섯 살 위의 전남편을 만나게 됐고 딸 예빈(12·가명) 이를 얻게 됐다. 불같이 반대한 부모의 성화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지만 행복했던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결국은 병 때문이었다.

연주 씨의 신장은 예빈이를 낳고 나서 일주일에 3회 이상 투석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나빠졌다. 당시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는 연주 씨에게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출산이 신장에 치명적인 무리를 줄 거라는 이유에서다. 연주 씨는 허락해주는 곳이 나타날 때까지 병원 수십 군데를 헤맸다.

결혼생활도 출산 2년 만인 지난 2009년 끝내야 했다. 연주 씨는 "육아도 집안살림도 잘하고 싶은데 신장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다. 스스로 짐이 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먼저 이혼을 강요했다"며 "내 욕심 때문에 예빈이를 데려왔는데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친정엄마가 몇 년간 뒷바라지를 해줬다"고 말했다.

◆ 5년 전 신청한 신장이식 비용마련 막막해

연주 씨는 5년 전 신장이식을 신청했지만 수술비 700만 원은 꿈도 못 꿀 형편이다. 현재는 관절염도 심해 외출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아픈데다 루푸스 병세도 전혀 호전이 없는 상태다. 또 투석을 한 번만 걸러도 온 몸이 팅팅 붓고, 1년에 한 번은 1달 이상 장기 입원을 해야한다. 130만 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금에도 생활고는 점점 심해져 파산상태의 부친에게 번번이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경이다.

연주 씨는 당장 내년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함께 살 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연주 씨가 신장이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도 예빈이 때문이다. 집이든 병원이든 언제나 옆을 지켜주는 딸은 바라만 봐도 눈물이 흐를 만큼 아픈 구석이다.

연주 씨는 "딸이 병실에서 날 지키면서 언젠가 '기증자가 안 나타나면 내가 신장을 떼주고싶다'고 속삭였던 순간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라며 "나도 딸이 클 때까지는 평범한 엄마처럼 힘이 되고 싶은데 왜 예빈이가 나 때문에 벌써부터 이렇게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지 너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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