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생활사 스토리텔링] 성주 독립운동에 얽힌 사연

입력 2019-10-17 06:30:00

파리장서운동과 성주 3·1운동의 역사 현장이 바로 초전면 고산리 백세각(百世閣)이다. 송준필과 그 문인들이 성주시장 만세운동에 앞서 3월 26일 유림과 국민에게 독립을 촉구하는 글인 '통고국내문' 3천 장을 인쇄해 뿌렸고 파리장서운동을 앞장서 모의한 곳이다. 그런데 이 백세각에서 가까운 봉강서당에도 사연이 있다.

송준필이 통고국내문을 찍을 때 봉강서당 내 흥효당의 청목(廳木·청마루창 나무) 가운데 한 장을 떼어낸 다음 송인집이 글씨를 쓰고 송중립이 새겼다. 인쇄 뒤 판을 다시 마루창에 맞춰 경찰 눈을 피했다. 마루창 원판은 1980년 7월 다시 빛을 봤는데, 현재 목판 2장 중 1장만 남았다고 야계 종가 송만수(70) 20대 주손(송준필 종현손)은 아쉬워했다.

한편 성주에는 마을 문중에서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돼 이를 기리고 있다. 야성 송 씨가 많은 초전면 고산리·문덕리 출신이 11명, 성산 여씨 집성촌인 벽진면 수촌리와 성산 이씨 동족마을인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출신이 각각 7명씩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산리의 '백세각항일의적비'(2004년)나 수촌리 '기미 대한독립만세의거지 기림비'(2017년)가 세워진 까닭이다.

정인열기자

봉강서당 내 흥효당 마루에서 떼어내 새긴 통고국내문 앞 모습. 야계 종가 송만수 20대 주손 제공
봉강서당 내 흥효당 마루에서 떼어내 새긴 통고국내문 앞 모습. 야계 종가 송만수 20대 주손 제공

2017년 벽진면 수촌리에 세운 기미 대한독립만세 의거지 기림비. 여수연 수촌리 이장 제공.
2017년 벽진면 수촌리에 세운 기미 대한독립만세 의거지 기림비. 여수연 수촌리 이장 제공.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