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무릎 주사가 나왔다더라. 비싸긴 하다던데…" 어머니가 무뚝뚝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말을 꺼낸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연골이 닳아서 아픈 거라 방법이 없어요. 일 좀 그만하고, 아플 때 약 드세요. 살도 좀 빼시고요" 아들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어머니는 무릎을 꾹꾹 누르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퇴행성관절염'은 관절 연골의 퇴행성 변화로 염증과 통증이 유발되는 병이다. 젊은 날 연골이 닳도록 일한 상처다. '황혼 육아'로 증상이 심해지기도 해 '손주병'으로도 불린다. 안타깝게도 연골을 재생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약으로 통증을 조절하고 관절에 과부하가 되지 않게 생활 습관을 바꾸도록 권한다.
그런데 2년 전 '바이오 신약' 인보사가 등장했다. 제조사인 코오롱 생명과학은 유전자 조작 연골세포로 만든 한국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라 했다. 고통받던 환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1회 주사에 700만 원을 넘는 고가였지만 1년 남짓 동안 무려 3천700여 명이나 맞았다. 그런데 지난 3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세포 성분 검사요청 과정에서 인보사의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니라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 세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세포가 바뀐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무책임한 변명이다. 약의 시판을 허가해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책임도 크다. 1차 약사심의위원회에서는 인보사의 시판이 불허됐다. 연골재생 효과도 없이 통증을 줄이기 위해 위험성이 있는 유전자치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두 달 뒤 재심의에서 허가되고 말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인보사를 맞은 86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를 지난주 발표했다. 10명 중 6명은 통증의 호전이 없어 다른 치료를 받아야 했고, 절반 이상의 환자는 신장 세포가 사용된 사실에 불안감을 호소했다. 주사를 맞기 전 '연골 재생 효과'가 있다는 '과장된 설명'을 들은 환자도 66.3%나 되었다. 이들의 불만과 불신은 병원과 의사를 향하고 있다.
'바이오 신약', '바이오 헬스' 등 '바이오 광풍'이다.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유혹한다. 그러나 '바이오'의 참뜻인 '생명'은 경시되고 '돈'이 더 중시될 때 환자에게 전가되는 '억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인보사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오른쪽 무릎이 벌에 쏘인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무릎 안쪽은 솜뭉치를 쑤셔 넣은 듯했다. 아니다. 그건 솜뭉치가 아니었다. 엄마가 버텨 온 세월이 거기, 당신의 무릎 안쪽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다.'
이명랑의 소설 '엄마의 무릎'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고, 손녀까지 봐주시느라 연골이 닳아버린 어머니의 아픈 무릎을 한 번도 만져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진정 원했던 건 비싼 주사가 아니라 아들의 따뜻한 손길이 아니었을까?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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