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兎死狗烹(토사구팽)-쓸모가 다하면 버려진다

입력 2019-10-14 16:48:56 수정 2019-10-14 18:43:07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인간은 요사한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필요하면 애지중지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매정하게 버린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같은 말이다. 춘추 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勾踐)에게는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라는 두 공신이 있었다. 그들은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업을 이루어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범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제(齊)나라에 은둔한 범려는 인편으로 문종에게 "새가 없어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蜚鳥盡, 良弓藏),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게 되오(狡兎死, 走狗烹). 그대는 왜 월왕의 곁을 떠나지 않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명예와 지위에 연연했던 문종은 범려의 권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월왕에게 자살을 강요받았다. 문종이 죽고 월나라도 기울기 시작했다.

송나라 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은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늘 자신을 추대했던 공신들에게 불안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술상을 차리고 그들을 불렀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송태조가 말했다. "그대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불안하기만 하오." 공신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대들이라고 왜 내 자리가 탐나지 않겠소"라고 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驚惶罔措) 공신들에게 "그대들의 공은 영원히 잊지 않겠소. 후손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으니 이제는 병권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했다. 이튿날 공신들은 병을 핑계로 앞다투어 사직했다. 술상에서 병권을 뺏는다는 배주석병권(盃酒釋兵權)의 이야기다. 송태조는 약속을 지켜 공신들을 원로로 대접했고 300년간 지속되는 송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매우 시끄럽다. 그들이 검찰개혁의 희생자가 되어 토사구팽될지, 공을 세운 뒤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공성신퇴(功成身退)할지 궁금하다. 월나라는 기울었고 송나라는 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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