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별고을 널리 알리다
전국 시(市)·군(郡) 지명에 별 성(星)이 든 곳은 성주뿐이다. 모두 재(고개) 성(城)이다. 성주는 '소가 누워 하늘의 별을 보는 꼴'인 풍수 탓인지 별(星) 자를 쓰고, 별 같은 인물도 숱하다.
옛 가야 등 왕조와 인연도 있다. 첫 성주 명칭을 쓴 고려 충렬왕은 성주를 왕가 세금을 걷는 탕목읍(湯沐邑)으로 삼았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왜장(倭將) 아지발도 원정 때 머물렀고, 태종·단종·세종대왕 18왕자 태실에 사고(史庫)도 153년간 두었다.
경상도 중심이라 교육, 사상, 문화의 교류·전파처로 관리, 학자, 인재가 별처럼 빛났고 나왔다. 성주향교 강희대 전교가 전한 "성주는 지갯작대기 짚은 사람도 5언,7언 절구는 한 수(首) 짓는다"는 옛 이야기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하다.
◆붓으로 문향·유향의 별고을 알린 사람
성주는 전국적 문명(文名)의 별같은 인물을 역사 무대에 많이 배출해 문향(文鄕)과 유향(儒鄕)의 고을이 됐다. '제왕운기'의 이승휴, 과거 급제한 이조년과 4형제(이백년·천년·만년·억년), 포은 정몽주·목은 이색과 3은(三隱)으로 불린 도은 이숭인, 관인문학(官人文學)의 이직, 사림문학(士林文學)의 김맹성, 방외문학(方外文學)의 권응인 등이 손꼽힌다. 성주문화원의 '성주문원'(星州文苑)에 오른 옛 인물만 332명, 문집류도 226종에 이른다.
길지 성주는 영남 4대 고을(경주·상주·안동·진주)에 버금가 재지 사족이 많았다. 남인(南人) 당파라 조정과 먼 만큼 차라리 학문은 융성했다. 2,3차례 성주에 온 정인지가 일찍 "성주는 큰 고을이어서 국가에서는 꼭 선비 가운데 뛰어난 이를 뽑아 보내고 있다…준걸 같은 인재가 아니거나 예리함이 무디어진 사람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고 할 만했다.
성주는 또 퇴계(이황)학파와 남명(조식)학파를 수용한 공존의 고을로, 두 학파를 받든 대표 유학자 동강(東岡) 김우옹과 한강(寒岡) 정구를 배출, 양강(兩岡)의 땅이 됐다. 이후 여헌 장현광, 한주 이진상·한계 이희승 부자, 공산 송준필·심산 김창숙 등이 유향의 맥을 이어 한려학파·한주학파를 빛냈다. 이런 성주인의 붓과 유림은 뒷날 독립운동에서 빛을 낸 바탕이 됐다.
◆별고을 알린 사고와 봉안사·포쇄사
조선조 기록물 보관소인 성주사고 설치는 우연이 아니다. 고려의 가야산 해인사 사고 이후 다시 가야산 주변에 두어 성주와 두 왕조의 각별함이 묻어난다. 경상도 유일 사고로, 세종 때(1439년) 설치 건의로 1592년 임란에 불 탈 때까지 유지됐다. 태실·사고로 성주는 세종과 특별했고, 사람 발길과 관심을 끌 만했고 이는 성주를 왕실과 전국에 널리 알린 전령사였다.
고을 수령과 경상 감사에 태실·사고는 국가 대사였다. 실록을 옮기는 봉안(奉安)과 2~3년마다 실록 등을 햇빛에 말리는 포쇄(曝曬)는 국가 행사였다. 나라가 엄선, 봉안사와 포쇄관(사)을 보냈으니 이들 행차는 분명 유별났다. 봉안 행차와 2~3일간 포쇄는 명물(名物)이었다. 행차 최소 일행이 수십, 동원 인원도 수백이니 인파가 몰려 성주사고 주변은 장사치 등으로 북적였으리라. 유희춘의 '미암일기' 속 봉안사 행차(1571년), 포쇄사 신정하의 '태백기유'(1709년)와 박정양의 '박학사포쇄일기'(1871년)를 보면 봉안사·포쇄관의 마중과 향응, 인원 동원에 인근 고을은 들썩였다.
왕의 사신을 위한 잔치도 흥청거려 오죽했으면 임금이 직접 이를 경계했을까. 이들이 머물 동안 성주의 기녀, 민가 여성과의 석별의 정을 나눈 연애담으로는 특히 포쇄관에 얽힌 사랑이 여럿 전한다. 채세영과 기녀 승두추, 고경진과 기녀 설매향, 김수동과 배철보 서녀(庶女)와의 사연이 회자되지만 이들 접대에 나선 백성의 고달픔도 읽힌다. 이밖에 성주 기녀 의침향, 영산홍, 은대선, 성산월, 승전지 사연도 남아 있다.
한편 성주사고 봉안사는 김길통(1445년), 강희맹(1472년), 홍귀달·권건(1499년), 소세양(1540년)이 확인된다. 봉안사·포쇄관은 성주의 풍수, 민심, 풍속을 왕실 등에 널리 알렸으리라. 혹 임란 뒤 명나라 절강서씨 서학(徐鶴)과 절강시씨 시문용(施文用)이 성주 관향 성씨가 29개에 이를 만큼 많은 성주에 정착한 까닭도 살 만한 길지였던 때문일까.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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