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하며 등단한 수필가 이미영 씨가 두 번째 수필집 '너에게 가는 길'을 펴냈다. 작가는 '좀 더 나은 나'를 수필집 제목의 '너'로 상정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일이 대단한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지만 그저 공을 들여 쓴다"며 부지런히 쓰는 일이 곧 '너에게 가는 길'이라고 정의 내린다.
◇ 사람은 점점 집이 되어간다
이미영 작가는 수필 한편에 온 생을 담을 태세다. 이번 수필집 속 첫 작품 '집이 되다'는 신행길에 시댁까지 나를 데려다주셨던 친정아버지가 (친정)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부여잡았던 두 손을 풀며 "금방 여기가 더 편해질 거다" 하셨지만 시댁은 좀처럼 편해지지도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이야기는 그처럼 낯설기만 했던 시댁, 돌아가고 싶은 친정, 이불 밑에서 동생들과 수다 떨던 기억속의 밤을 지나,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내 집을 풀쩍 뛰어넘어, 대학에 입학하면서 떠나버린 아이의 서울 기숙사 방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큰병을 앓은 친정아버지가 마련해두신 '천년 집(묘터)'으로 이어진다.
'세상에서 혼자인 듯 막막하던 시집이, 퍼질러 앉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꾸벅꾸벅 조는 곳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친정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다. 엄마만 바라보던 아이들이 자라고 곁을 떠나면서 내가 집이 되어간다는 걸 천천히 깨닫는다. (집이란) 부모님이 계시던 곳에서, 내 식구가 사는 곳으로, 다시 아들이 자러 오고 싶은 장소로 속뜻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는 일은 이사를 하는 일인가 싶다. 집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내가) 집이 되었다가 '영원의 집'으로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집이 되다- 중에서.
◇ 살다보니 '포장의 달인'이 되다
작가는 "주부로 한 오십 인생을 살면서 선물포장이든 얼굴포장이든 포장에는 달인이 되었다."는 자칭 숙련공이다.

"여보세요. 전화 잘못 거셨어요."
잘못 걸려온 전화에 목청을 가다듬고 상냥하게 답했다. 그러자 아들 녀석이 "엄마는 왜 전화만 하면 목소리를 꾸며요?"라고 말한다. 아이들 야단을 치다가도 전화가 오면 목청을 가다듬고 상냥한 말씨를 쓰는 것은 나 어릴 때 친정 엄마도 그랬다. 어디. 나이든 엄마들만 그럴까.
"아유, 그 집 아들은 인사성이 참 밝아요." 아파트 11층에 사는 이웃이 작가에게 건네는 인사다. "집에 들고 날 때 제발 인사 좀 하고 다녀라." 고 노래를 불러도 바람처럼 오가는 녀석이 동네 어른들한테는 포장을 잘도 하는 모양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대문 안과 밖이 다르기는 매한가지다.
가식이라고 나무랄 마음은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들 녀석이 집에서는 새는 바가지이지만 밖에서는 야무지다니 다행이고 고맙다.
눈물 콧물 짠다고 아픔이 마르지는 않을 것이고, 성난 얼굴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얼굴로 답해 올 것이다. 작가는 "앞으로도 더 곱게 싸고 리본을 묶을 것이다. 모자람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아픔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포장의 달인이 되련다."고 말한다.
◇ 수필의 샛길 하나 새로 내는…
작가는 책머리에서 "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길을 낼 뿐입니다. 저는 조금 다른 수필의 샛길 하나를 내고 싶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빛과 대지의 색을 관찰하며 신나게 그린다는 어느 화가처럼 매일 읽고 생각하며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신나게 '너에게 가는 길'을 가겠습니다."고 말한다.
다양한 수필 형식의 시도,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사유, 세상을 향한 따듯한 시선이 돋보이는 수필집이다.
이 수필집은 모두 5부에 41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단편적인 사건, 하나의 사물 혹은 하나의 장면으로 시작해 '사람살이'를 통찰하는 작품들이다. 이미영의 수필은 깊은 사유와 감각적인 문체로 잘 알려져 있다. 2019년 대구문화재단의 개인예술가 후원금 수혜 작가이자, '빛나는 수필가 60인'에 선정된 작가다. 240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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