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지역과 인근 지자체 업체들 불법폐기물 '돌려막기' 만연

입력 2019-10-06 18:50:54 수정 2019-10-07 12:45:22

영천지역 반입·반출 수만여t 불법 폐기물, 포항·경산·경주·고령 등지서 돌고 돌아
정부 및 지자체 실태 파악 못하는 탁상행정, 공무원 및 업계 시스템 개선 및 소각장 증설 등 특단 대책 주문

지난 2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신보라 의원이
지난 2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신보라 의원이 '돌려막기식' 불법폐기물 반입 현장으로 지목한 영천시 북안면에 있는 문제의 업체 모습. 영천시는 이 업체에 방치된 불법폐기물에 대해 행정대처분을 추진하고 있다. 매일신문DB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경북 포항과 영천지역 업체 간 '돌려막기식' 불법폐기물 처리 문제(매일신문 10월 4일 자 1면)와 관련, 이와 유사한 사례가 영천과 인근 지자체 업체들 사이에서 만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와 지자체의 탁상행정으로 전국에 걸쳐 120만t에 달하는 불법폐기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주민 민원과 환경오염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돌려막기 '더 있었다'

영천시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신보라 국회의원이 환경부 국감에서 지적한 포항과 영천지역 업체 간 86t 규모의 불법폐기물 돌려막기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영천 북안면 한 업체에 방치된 폐기물 물량이 허용치 1천96t의 6배 정도인 6천여t에 달하는가 하면, 영천에서 수년간 폐기물이 반입·반출된 곳도 포항을 비롯해 경산·경주·청도·고령 등 여러 지역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안면에 위치한 문제의 업체는 영천시가 지난 6월부터 폐기물 반입·반출 금지 조치와 함께 9월부터는 행정대집행 절차를 밟고 있어 현재는 폐기물 이동이 원천 차단된 상태다.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공장 창고를 임대해 수도권 등지에서 불법 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2만여t의 폐기물을 방치, 말썽을 빚은 또 다른 업체는 문제가 커지자 폐기물을 경주로 대량 반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곳 공장 관리인 A씨는 "이 업체가 추석 당일인 지난 9월 13일 새벽시간대에 25t 화물차량을 통해 불법폐기물을 싣고 경주로 향하는 것을 추적했다가 경주IC에서 요금을 정산하던 사이 놓쳤다"고 귀띔했다.

A씨는 반출된 불법폐기물이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10시 12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건물과 폐기물 5천t을 태운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포장업체 물류창고에 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난 물류창고는 경주시청에 포장업체로 등록됐지만 임대된 상태였고, 내부는 불법폐기물이 가득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지자체에 사업장을 신설해 불법폐기물을 대거 옮긴 사례도 있다. 경산에 있는 한 업체는 수년간 방치해 온 불법폐기물을 행정기관이 처리하라고 하자 영천시 금호읍에 보관업체를 새로 마련했다.

하지만 허용치 531t을 훌쩍 넘는 880t의 불법폐기물량을 옮겨 방치하다 영천시로부터 반입중지 명령 및 고발 조치됐다.

업계 관계자는 "영천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만7천t 정도의 불법폐기물이 외부에서 반입된 것으로 추산된다"며 "지자체 단속과 사법당국 수사가 시작되자 일부는 경주와 청도, 고령, 대구 달성 등지로 반출되는 등 수 천여t의 물량이 돌려막기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처리 및 방지 대책 '없나'

불법폐기물은 법에 따라 투기 원인자나 사업주가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원인자 확인이 힘들거나 원인자가 조직적 투기일당에 의해 앞세워진 속칭 '바지사장' 등이어서 처리 능력이 없으면 건물 및 토지 소유주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또 행정기관이 진행하는 행정대집행은 혈세가 투입되는 막대한 처리비용과 함께 행정력이 소모된다.

영천시의 경우 현재 지역 내 8곳에 방치된 5만4천t의 불법폐기물 중 문제가 심각한 3곳의 1만3천650t에 대해 국·도비 12억원과 시비 18억원 등 30억원의 처리비용을 투입하는 행정대처분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 국감에서 드러났듯 불법폐기물 처리 과정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해 온 정부와 지자체의 탁상행정으로는 날로 조직화·지능화되고 있는 불법투기 조직들을 원천 소탕하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관련 공무원과 업계에선 불법폐기물 방지대책으로 ▷전문인력 보강 및 사법권한 강화 ▷불법 유통 감시·단속 예산 증액 ▷폐기물 처리시스템 개선과 함께 폐기물 소각장 증설 및 처리비용 현실화 등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공무원은 "환경부가 지난 6월 '불법폐기물 특별수사단'을 출범하는 등 나름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자체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고 했다.

지자체마다 수 십에서 수 백여개에 이르는 처리업체와 은밀히 움직이는 불법 투기조직을 감시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지자체 특별사법경찰의 경우 오히려 위협과 협박을 받기 일쑤여서 경찰과 비슷한 수준의 체포·조사권 등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무원은 "정부의 폐기물 전산시스템인 '올바로시스템' 개선은 물론 폐기물이 최종 처리될 때까지 파악이 가능하도록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도입 확대, 운반차량 위성항법시스템(GPS) 장착 등 실시간 감시·처리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 등 불법폐기물 문제가 전국적 이슈가 되면서 돌려막기가 수그러들었지만 언제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른다"며 "불법 사업주와 무허가 운반업체 등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 제정과 함께 폐기물 소각장 증설 및 운반비 현실화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말썽을 빚고 있는 불법폐기물 2만여t 중 일부를 경주에 있는 포장업체 물류창고로 반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공장 창고 내부 모습. 매일신문DB
말썽을 빚고 있는 불법폐기물 2만여t 중 일부를 경주에 있는 포장업체 물류창고로 반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공장 창고 내부 모습. 매일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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