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이 촌스러움에 왜 빠져드는 걸까
소소하고 볼거리도 그리 없어 보이는데다, 배경도 어느 시골마을에 불과하고 인물들도 소외된 인물들 천지인 드라마. KBS '동백꽃 필 무렵'은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게 더 많은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0% 시청률을 내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건 왜일까.
◆김유정의 소설이 아니다, '동백꽃 필 무렵'
김유정의 소설인 줄 알았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소설과는 무관하다. 다만 분위기는 여러 모로 비슷하다. 어느 작은 바다를 낀 지방 작은 마을의 풍광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만들어내는 '촌스러움' 때문일 게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촌스럽다'고 말할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없다. 그것보다는 작은 마을이 갖는 사람냄새가 더 느껴진다.
사실 엄밀히 말해 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농촌 배경의 드라마나, 사투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 같은 것들이 최근 들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가끔 시골마을이 등장하는 건 스릴러 같은 살인사건들이 벌어지는 장소로서 나오는 정도랄까. 이렇게 된 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어떤 편견이나 틀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부터 될 드라마들의 요소들을 꼽는데 시골이나 농촌은 아무래도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치 김유정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대사에 묻어나는 '동백꽃 필 무렵'은 특이한 드라마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런 시도를 한 것이고 기획을 허용한 것일까. 거기에는 KBS '쌈마이웨이'를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에서도 중심에서 밀려난 청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위로를 담았던 작가가 아닌가. 그에게서는 이런 작은 지방 마을도 너무나 아름다워 '한번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특히 소외된 존재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를 끄집어내는데 있어서는 더더욱.

◆'쌈마이웨이'에 이은 '동백꽃 필 무렵'의 따뜻한 시선
'쌈마이웨이'는 제목에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던 드라마다. 그것은 본래 태권도가 꿈이었지만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하고 영원히 퇴출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 분)이 쌈(싸움), 즉 격투기로 마이웨이, 즉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제목이면서, 이른바 별 볼일 없는 3류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쌈마이' 취급을 받는 청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간다는 뜻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모든 청춘들은 마이너 취급을 받고, 메이저는 항상 저 편에 존재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지만 현실은 진드기 잡는 일을 하는 고동만이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으나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 일을 하는 최애라(김지원 분)는 각각 격투기 선수와 격투기장에서 선수를 소개하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
'동백꽃 필 무렵'은 '쌈마이웨이'의 이런 시각의 연장선이 있는 드라마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꿈이 꺾여 마이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의 삶 자체가 소외되어 있다. 드라마는 그 곳에서 술집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미혼모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작은 마을인 만큼 남녀가 길거리를 단 몇 분만 함께 걸어도 둘이 이제 곧 결혼할거라는 소문이 나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 이 곳에서 미혼모로 술집을 한다는 사실이 동백에게 얼마나 큰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겠는가. 그래서 스스로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버티고 살아가지만 그도 가끔씩 울컥 울컥 넘어오는 설움 같은 걸 느낀다. 그런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동백을 그렇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오직 단 한 사람 황용식(강하늘 분)만은 다르다. 순박하고 촌티 풀풀 날리는 이 옹산의 순경인 황용식은 도서관에서 동백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그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졸졸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 황용식의 촌스럽지만 대책 없는 순박함이 조금씩 동백의 마음을 건드린다.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편견을, 혼자서도 저렇게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내고 게다가 번듯한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며 '장하다'고 말해준다. 그 누구에게도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던 동백은 그렇게 치명적인 촌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황용식에게 눈이 간다. 이른바 촌므파탈의 탄생이다.

◆어째서 이 촌스러움에 빠져들게 된 걸까
그런데 이 촌스러움에 시청자들도 점점 빠져들었다. 6.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금세 10%를 찍었다. 입소문도 점점 나기 시작하면서 화제성도 커졌다. 무엇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을까.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드라마는 동백이라는 소외된 인물에 시청자들이 점점 연민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감하고 동일시하게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황용식이라는 엄청난 돌직구만을 던지는 인물의 거의 찬양에 가까운 동백에 대한 상찬을 늘어놓는다. 동백이 시청자라면, 황용식은 작가인 셈이다. 즉 임상춘 작가는 황용식의 입을 빌어 소외된 서민을 대변하는 동백이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인물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그러니 촌스럽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직언을 날리는 황용식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졸졸 따라다니는 황용식을 단념시키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공유라고 하자, "사람이 어떻게 도깨비를 이겨요?"하고 충격을 받지만 황용식은 자신도 "다이애나 비가 살아온대도 임수정이 저 좋다고 덤벼도" 동백과는 안 바꾼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늘 백안시당하며 살아와 자존감이 바닥인 동백은 황용식의 말 한 마디가 공유의 그 멋진 대사들보다 더 가슴을 건드린다. 그건 판타지라기보다는 더욱 일상적인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판타지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행복이 아닐까.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트렌드가 된 시대, 촌스러워도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황용식에게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드라마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수백억씩 들여 제작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한없이 즐겁지만 그럼에도 남는 헛헛함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거대한 판타지가 주는 욕망에 사로잡히다가도 문득 우리의 현실과는 겉도는 저 세계에 허무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게다. 대신 '동백꽃 필 무렵'은 지극히 현실이다 못해 더 바닥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소환해놓고 세상의 속물적 시선으로는 한없이 비천하게 여겨지는 그들이 그걸 벗겨내고 들여다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들인가를 말해준다.
'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결코 꽃을 피우지 못할 것 같은 삶조차 사실은 꽃이 피어가는 ' 무렵'에 서 있다고 말해준다. 시골 마을의 촌스러움이 도회지의 세련됨을 이겨내는 순간이다. 그것은 또한 지금의 서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와도 맞물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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