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친소] 수달 키우고 싶어서 동물원 통 크게 차렸어요!

입력 2019-10-02 18:00:00 수정 2021-08-13 11:54:48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눈알을 굴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눈알을 굴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연상연하 커플 돌체와 라떼. 주변의 눈총에도 하루종일 붙어 다니며 애정을 과시한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연상연하 커플 돌체와 라떼. 주변의 눈총에도 하루종일 붙어 다니며 애정을 과시한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무표정한 얼굴로 물에 둥둥 배를 내밀고 떠다니며 조개를 깨 먹는 모습은 흡사 배 위에 과자를 올려놓고 주말 내내 티브이를 보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잠잘 때 다른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은 또 어떠냐. 거친 물살에 동료를 잃을까 맞잡은 두 손은 잊고 있던 인류애까지 유발한다. 거기에다 제 몸 크기만 한 잉어를 후딱 해치우고는 남은 음식도 얼른 달라는 듯 손으로 툭툭 치는 뻔뻔함까지 갖췄으니 우리네 모습과 꽤 닮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게으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꾀 많은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수달의 매력에 푹 빠졌다" 대구 중구에 사는 서선경 씨는 올해 수달 두 마리를 입양했다. 돌체(남)와 라떼(여). 무려 4살 차이 연상연하 커플인 이 녀석들은 선경 씨가 보든 말든 깨 볶는 고소한 애정을 과시한다.

코 옆으로 난 긴 수염과 젤리처럼 말랑한 발바닥. 수달은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코 옆으로 난 긴 수염과 젤리처럼 말랑한 발바닥. 수달은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수달은 다섯 손가락을 지닌 몇 안되는 동물 중 하나. 그 덕에 고품격 라이프를 즐긴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수달은 다섯 손가락을 지닌 몇 안되는 동물 중 하나. 그 덕에 고품격 라이프를 즐긴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우리나라에서 수달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아무리 애정을 쏟아도 제 반려동물이 될 수 없다. 사육사와 소속 동물은 공적인 관계에 놓인 '일로 만난 사이'일뿐이기 때문이다. "부산 아쿠아리움 근무 당시 첫 담당한 동물이 수달이었다. 4년간 함께하며 그 매력에 푹 빠졌지만 우린 스승과 제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애틋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마음을 붙였다 싶을 땐 담당 동물이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불멸의 명대사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를 외쳤던 배우 김하늘의 심정이 이해 가는 부분이다.

선경 씨는 올해 대구 중구에 동물원을 열었다. '널 위해 섬 하나 통째로 빌렸어" 드라마 속에서만 나올 법한 장면이 대구 도심에서 벌어진 것이다. 수달을 반려동물로 키우고 싶어 동물원을 아예 차려 버린 선경 씨의 통 큰 결정은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을 수십 번 이겨낸 끝에 쟁취한 수확물이었다. 선경 씨가 입양한 돌체와 라떼는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발톱 수달'이라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유라시아 수달'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이 아니어도 멸종 위기 2급에 지정돼있는 종이라 동물원, 수족관, 연구 및 보호기관에서만 사육이 가능하다. 또한 수달은 물과 땅 모두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땅 공간 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수조가 필요하다. 환경청은 수달의 사육환경을 땅 면적과 물 면적 두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야생동물 수달과 친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야생동물 수달과 친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응화 기간을 거치면 누구보다도 애교 많은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응화 기간을 거치면 누구보다도 애교 많은 수달. 독자 서선경 씨 제공

◆귀여운 외모에 속았다간 물리고 뜯기기 십상

젤리처럼 말랑한 발바닥, 코 옆으로 난 긴 수염,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눈동자, 여기에 통통하고 길쭉한 탐스러운 꼬리까지. 보고 있노라면 엄마 미소를 유발하게 만드는 수달은 그야말로 귀여움의 결정체다. 그러나 단순히 외모에 속아 이 동물에게 함부로 다가간다면 생각지도 못한 큰 '봉변'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수달은 야생동물이다. 그 말인즉슨 가축화가 되어 사람에게 우호적인 개, 고양이, 소 등과 엄연히 다르다는 것.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수달을 분양받아 키우는 게 아니라면 수달과 친해질 때까지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무릎에 올라와 잠을 청하는가 하면 등에 올라타 선경 씨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하지만 선경 씨가 손을 뻗을라치면 날카로운 이빨을 으르렁 드러낸다.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그야말로 내로남불. 처음엔 녀석들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달려들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라 할 만하다. 선경 씨는 야생성이 남아있는 녀석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환심을 사고, 수달 커플 사이에 꼭 끼여 몇 날 며칠을 함께 잔다. "강아지처럼 따르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맘을 여는 녀석들을 보면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수달은 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는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우리 좀 봐~ 너무 예뻐" 휴대폰 속 자신들의 사진을 보고 자아도취 한 수달 커플.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수달은 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는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독자 서선경 씨 제공

◆인지·학습·해결 능력 뛰어난 꾀 많은 동물

선경 씨가 운영 중인 동물원은 이틀에 한 번꼴로 대청소를 한다. '동물원을 내 방처럼'이라는 선경 씨의 구호 아래 수달 커플에게도 청소 때만큼은 수영 금지령이 내려진다.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 수영을 좋아하는 돌체 라떼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만 선경 씨는 얄짤없다. 계단을 떡하니 막아서곤 혹시라도 밟을까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 철옹성을 뚫기 위해 수달 커플은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다 선경 씨 어깨로 올라가 등을 발판 삼아 펄쩍 뛴다. 0.00001초 후 '풍덩' 소리와 함께 수달 커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영을 즐긴다.

"얼마나 꾀가 많은지, 가끔 방송에 나오는 천재견들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것 같다". 수달은 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는 머리가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학습능력과 해결 능력이 뛰어난 수달은 '먹잇감(먹이 터)이 있는 곳'을 수 년 동안 기억하고 찾아가는가 하면 운동신경이 뛰어나 1m의 높은 장벽도 쉽게 넘을 수 있다. 안녕, 손, 코대기 같은 훈련은 물론 인지능력이 좋아 사람이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쉽게 친화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단, 이런 성격 때문에 인공적인 환경에 쉽게 적응을 해 야생성이 퇴화되는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다.

선경 씨는 동물원 운영 외에도 틈틈이 돌체 라떼의 귀여움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내 새끼 자랑하고 싶어 시작 한 유튜브였지만 지금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선경 씨다. "돌체, 라떼를 통해 사람들이 더 쉽게 수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곘다. 멸종위기인 수달종에 대해 널리 알리며 직접 구조하기도 하고 인공번식도 해 종 보존에도 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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