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대구시의회, 청년들 목소리 듣겠다더니…

입력 2019-09-29 18:05:19 수정 2019-09-30 07:37:30

'청년 친화도시 만들기' 토론회가 단순 관제행사로
홍보영상·내빈소개·의원 퍼포먼스에 시간 절반 할애
'의회 일정' 토론자들은 발언 딱 한 번, 질문도 안받아

단상에 오른 시의원들이 '연애 yes', '결혼 yes', '취업 yes'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었다. "대구 청년 힘내라!"는 외침이 터지자 카메라 불빛이 번쩍였다. 대구시의회는 이런 사진을 첨부한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 25일 대구시의회가 주최한 '토론회'의 풍경이었다.

이날 '청년 친화도시 만들기' 주제 토론회에 기자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시의원들이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구를 '청년이 선호하는 도시'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주제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청년 기자'의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한동안 고민도 했다. 그러나 토론회 시작 5분만에 이런 고민이 모두 쓸모없었음을 깨달았다.

오후 2시 30분쯤 시작한 행사는 절반 이상 토론과 상관없는 일정으로 채워졌다. 청년정책과 무관한 20분짜리 시의회 홍보영상이 상영됐고, 행사장 가장 앞자리는 주인공인 '청년'이 아니라 전현직 정치인들과 관료 등 '내빈 여러분'들 차지였다. 내빈 소개 및 시의원 퍼포먼스, 기념사진 촬영이 끝나자 예정된 시간의 절반이 흘렀다.

주제발표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정책'이 소개되자 곳곳에서 비웃음소리도 나왔다. 그리고 정작 토론이 시작되자 '내빈 여러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떴고 의장단과 일부 의원들만 남았다. '청년 의원'을 자칭한 한 시의원은 한동안 '참석 기회를 주신 의장님과 내빈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늘어놓고는 "요즘 청년들의 노력과 도전정신에도 문제가 있다"는 '꼰대어'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이런 토론조차 '의회 일정상' 예정보다 50분 일찍 끝났다. 토론자들은 한 차례씩만 발언 기회를 받았고, 질의응답 시간은 없었다.

이른바 '내빈 여러분들'이 진정 청년 친화도시 대구를 생각한다면 이런 예산 소모성 관제행사를 만들 게 아니라 직접 청년을 발로 찾아 만나야 한다. '도전정신' 운운하며 훈계하지 말고 부디 정말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경청하기 바란다.

박상우 경북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이유 가운데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회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꽤 높다"고 했다. 그러나 '90년대생'인 기자는 그게 왜 '의외'인지가 더 신기했다. 이번 토론회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행사 내내 부끄러워서 대구를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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