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아버지와 네 번의 눈물

입력 2019-09-26 11:17:34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오늘은 나의 아버지 생신 이시다. 근데 난 가보지 못했다. 이유야 어떻든 굉장히 불효를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평상시 아버지의 생신이라면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라도 같이 했을 터인데…. 사실 지금의 나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리고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지신 분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아버지와의 기억, 아버지로 인한 눈물 몇가지를 적어 보고자 한다.

아주 어렸을 적 굉장히 아픈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터라 그 당시엔 병원도 없었고 교통도 굉장히 불편했다. 이동수단이라야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꽤 먼거리 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를 업고 걸어 갔고 난 아파 정신이 몽롱했지만 아버지의 등에서 배어나오는 땀 냄새를 맡으며 울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등짝에 배인 땀이 진통제의 역할을 했는 것 같아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사춘기 일때는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느날 친구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 친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짓과 묘한 음성으로 반겨 주었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옆집 아저씨"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죄송함과 막막함이 나를 짓눌렀으며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버지의 몫까지 세상에 다 표현 하겠노라고…. 그 결과 오늘의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스물이 갓 넘었을 때 아버지의 회갑연이 있었다. 자식들이 쌍쌍히 나와 절을 하였고 막내인 난 맨 마지막에 절을 하였다. "아버지 생신 축하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엎드린 순간 왠지 모를 울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도 울고 계셨고 누나도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채 멀뚱히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어머니의 한을 묵시적으로 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 90을 바라볼 때 어머니가 뒷바라지 하기가 힘이 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를 한번 안아 주면서 "아버지 잘 계세요" 했는데 아버지는 걱정말라고 하는 듯 내 등을 토닥 거려 주셨다. 그것이 또 얼마나 서러운지 돌아서는 순간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곳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삶의 끝의 여정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눈물은 하나 뿐인거 같다. 정말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다. 오늘 아버지 생신 때는 찾아 뵙지 못했지만 내일 이라도 찾아 뵈어 "아버지 날 낳아 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는 꼭 해야 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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