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민부론(民富論) 비판

입력 2019-09-24 15:53:01 수정 2019-10-02 16:46:13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제1 야당이 현 정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민부론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경제 활성화나 경쟁력 강화나, 자유로운 노동이나 지속 가능한 복지도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장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가고 혼수상태에 빠진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 말이다. 그동안 유능하지 않은 정부 간섭이 너무 지나쳤다.

문제는 '어떻게'다. 경제 활성화의 경우 관치경제에서 시장 중심의 자율경제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이나 은산분리 규제 합리화, 병원 등의 영리화 허용 등 수없는 입법 과제를 나열해 놓았다. 그동안 수도 없는 법안들이 혹은 야당이 혹은 여당이 반대해서 묶여 있지 않았던가? 한두 번도 아니지 않은가? 의석수가 턱없이 밀리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어떻게 입법할 것인가. 입법부 병목에 대한 대안이 나와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든다고 했는데 박근혜 정부도 깨(끗하고) 투(명하며)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고서도 엉뚱하고 왜곡된 인사 혹은 행정 전횡으로 망치지 않았던가. 저 정도면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하겠구나, 박근혜 정부가 못한 깨투유를 확실하게 해 주겠구나 하는 신뢰를 보낼 만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청사진을 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끼리끼리 나눠 먹고 임명하고 그럴 것 아닌가.

자본시장 글로벌화나 조세의 국제기준 부합 주장도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게 해 주자는 생각인데 너무 대기업 중심의 발상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발상이다. 지금 자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이 돌지 않아서 문제이다. 무분별하게 외자가 들어오면서 늘어나는 대외 부채나 강세가 되는 원화 환율의 악영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법인세나 상속세를 낮추자고 하는데 그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국민들의 과도한 준조세 부담을 낮추어 주는 문제가 아닌가.

경쟁력 강화는 더 의아하다. 민부론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너무 과보호되어 있으므로 '보호와 규제'에서 탈피하여 '개방과 경쟁 촉진'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 신생 중소벤처기업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면면을 타고 내려오는 벤처 지원 타령이다. 그동안의 벤처 지원 성과를 꼼꼼히 따져보기나 했는가? 국민 혈세가 얼마나 새고 사라지고 탕진되었는지 따져보기라도 했는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나눠 먹는 식의 봉이 김선달류의 맹탕 지원을 언제까지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민부론은 이 정부의 성과 없는 앵무새 혁신성장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중소기업이 과보호되었다는 시각에는 0.1%의 중소기업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버려졌고 냉대받고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 중소기업이었다. 국가 전체 고용이나 생산의 80% 가까이를 기여하면서도 다른 모든 것이 발전하는 동안 유독 정체되거나 낙후되었던 것이 중소기업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헤매는 것도 지난 30년 이상 중소기업이 소외되고 백안시되고 왕따당해 왔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너무 과보호되어 있다는 것은 중소기업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대기업 편향적 시각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지식재산권이나 기술자료 임치(任置) 등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해야 한단다. 이 무슨 모순인가. 앞뒤도 안 맞다.

몇 가지 제안을 하면 이렇다. 첫째,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많이 나열해 봤자 아무도 보지도 읽지도 않는다. 딱 몇 가지만 찍어서 추진하자. 작은 정부를 위한 정부조직 개편안, 투명한 정부를 위한 정보 공개 및 공무원 역량 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자. 정부가 작고 유능해지면 규제는 저절로 줄어든다. 또 다른 하나는 중소자영업 경쟁력 강화 5개년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수입과 지출을 연계하겠다는 재정건전화법도 참신해 보인다. 이 세 가지만 해도 국민들은 안심하고도 남는다.

둘째, 우선순위를 밝혀야 한다. 집권하면 무엇부터 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내 판단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5개년 계획이 1순위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그다음이다. 끝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유능한 새 사람들로 교체되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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