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체제와의 단절·반성 선언한 獨
군국주의 연속선상 정통성 주장 日
“올림픽 욱일기 사용 韓만 문제 삼아”
전쟁 범죄 사죄 못할망정 억지 주장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 다를까. 독일은 과거를 멀리하고 일본은 과거를 가까이 한다고 한다. 독일은 2차 대전 이전의 나치 체제와의 단절에서 국가의 정당성을 구축했고,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의 연속선상에서 국가의 정통성을 찾았다. 독일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1951년 의회연설에서 "독일의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 범죄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도 도의적 금전적 보상 의무가 있다"며 과거와의 단절과 반성을 선언했다. 맥아더 점령군 사령관의 지시를 받기는 했으나, 일본은 이전의 메이지헌법 체제하에서 제국의회의 심의와 천황의 재가를 거쳐 신헌법을 제정, 공포했다.
독일은 연합국에 의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더해 스스로 국내법을 만들어 전범을 처벌했다. 일본은 연합국의 도쿄 국제군사재판을 부정하고 연합국의 군사점령이 끝나자 전범을 석방했다. 1952년 일본 국회는 원호법과 연금법을 개정하여 전사자와 마찬가지로 전범과 그 유족에게 연금과 위로금을 지급했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전범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같은 논리에서 전쟁 중에 그들이 저지른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은 범죄가 아니며 배상의 의무도 없어진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와 욱일기(旭日旗, 떠오르는 아침 해와 같은 기세)가 논란이다. 욱일기는 태양을 상징하는 일장기에 황실의 문양인 국화의 꽃잎을 햇살 무늬(光線)로 형상화한 것이다. 욱일기는 1870년과 1889년에 각각 육군과 해군의 정식 군기로,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 편성된 항공부대도 사용하면서 일본군의 상징이 되었다. 육군은 "무용(武勇)으로 국위를 세계에 떨친다"는 의미로, 해군은 "햇살 무늬는 세계에 천황의 위엄을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에서 만든 전쟁 홍보영화에는 침략 전쟁의 상징으로 하이켄크로이츠(逆卍字)와 함께 반드시 욱일기가 등장했다. 패전과 함께 욱일기도 사라졌으나, 1954년 육상 자위대와 해상 자위대가 발족하면서,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말한, "옛 제국군의 전통을 잇는다"는 취지로 다시 사용되었다.
1945년을 기점으로 한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 상징의 연속과 단절일 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 이전 나치의 당기와 국기에 사용되었던 하이켄크로이츠를 금지하고 나치 시절 애창되던 국가의 1, 2절 가사는 삭제하고 3절만 사용한다. 일본의 경우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제를 비롯해 일장기, 욱일기, 국가(기미가요)를 그대로 사용한다. 왜 욱일기는 사용되고 하이켄크로이츠는 금지되었을까. 왜 독일은 반성하고 일본은 하지 않을까. 독일 할레대학 맨프레드 교수는 주변국과의 관계도 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으로부터 나치의 부활을 계속 감시받았고,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유럽통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각국은 일본을 감시할 여력이 없었다. 중국은 내전에 시달렸고, 한반도는 전쟁 와중에 있었고, 동남아의 신생국들은 내부 정비에 바빴다. 경제적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시아 각국은 일본을 추궁하지 못했고, 이를 이용한 일본은 경제적 지원이라는 형태로 그들과 쉽게 타협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위안부라는 인권문제가 등장하고 아시아 각국이 성장하면서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욱일기는 풍어, 출산 등에도 사용되었으며, 군국주의 상징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욱일기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팸플릿을 만들어 중국 방문객들에게 배포했다. 일본은 한국만이 욱일기를 문제 삼는다고 하나 중국도 공감을 표하고 국제축구연맹(FIFA)도 금지한 경우가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과거와 단절한 일본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