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에 기대다/김남희 지음/빛을 여는 책방 펴냄

입력 2019-09-28 06:30:00

옛 그림에 기대다 표지.
옛 그림에 기대다 표지.

같은 영화나 소설, 같은 공연작품을 감상하더라도 보는 이, 읽는 이에 따라 감동은 달라진다. 옛 그림도 그럴 것이다. 학자는 시대의 경계를 그은 작품에 주목할 것이고, 애호가는 예술성에, 투자자는 소장가치에 주목할지도 모른다.

지은이 김남희는 '시절인연'에 주목해 옛 그림을 본다. 살아오면서 인연이 되었던 사람, 추억이 되었던 일, 기뻤거나 슬펐거나 간에 자신이 맞닥뜨렸던 일과 옛 그림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옛 그림(4계절 36편)을 중심으로 하되 한국화와 중국화, 서양화 등을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그림

1장 '옛 그림에 지혜를 구하다'는 옛 그림을 지은이 나름의 계절인연과 연결해 봄, 여름, 가을, 겨울편으로 구성했다. 봄은 주로 꽃과 관련한 작품들이다. 이제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매화, 활짝 핀 모란, 선비들의 봄꽃 구경, 새순 가득한 버드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조영석(1686년~1761년)의 '바느질' 그림은 봄과 딱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봄 편'에 배치하고 있다. 바느질이 해마다 봄이면 쑥떡을 해서 보내는 언니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언니는 우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책을 읽어주고, 뜨개질을 가르쳐주고, 바느질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언니가 가르쳐 준 바느질은 내 인생의 첫 매듭이었다. 바느질은 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고, 구멍 난 것을 꿰매어 새것으로 만드는 마술이었다. 바느질은 한 사람의 솜씨는 물론 인품까지 보여주는 섬세한 작업이다.' -34쪽-

어린 시절 바느질을 가르쳐 주던 언니, 이제는 해마다 봄이면 쑥떡을 해 보내는 언니를 생각하니 조영석의 그림 '바느질'은 자연스럽게 '봄 그림'이 되었다.

'조영석은 서민에게 관심을 가진 사대부화가였다. (중략)바느질 그림뿐만 아니라, 작두질하는 모습, 절구질하는 풍경 등을 그렸다. 화가 조영석이 사대부이면서 서민의 삶을 이해하려고 했듯이, 언니는 언제나 동생들을 깊이 배려했다.' -35, 36쪽-

◇ 소나무의 매력은 절개가 아닌 그늘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모두 2장으로 구성돼 있다. 옛 그림을 사계절로 분류한 1장이 21쪽부터 219쪽까지로 2/3를 차지한다. 장승업의 '홍백매도', 신윤복의 '연소답청'부터 김정희의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전반을 아우른다.

이인문
이인문 '송림야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장 여름편에 소개하고 있는 이인문의 '송림야귀도(松林夜歸圖)'는 보름달이 뜬 밤에 소나무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선비와 시동(侍童)을 그린 작품이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니 계절을 특정하기 어렵고, 굳이 계절과 연결짓자면 겨울에 어울릴 법하다. 하지만 지은이는 소나무를 여름과 연결한다. 나아가 여름이라면 맹렬함, 열정을 떠올릴법도 한데, 김남희는 소나무 그늘, 그것도 달빛에 생겨난 소나무 그늘과 느린 걸음에 주목한다.

소나무를 '시퍼런 절개'가 아닌 '유유자적'으로 읽고 있다는 점, 사철 푸름이 아니라 소나무 그늘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옛 그림과 그것들에 대한 감상은 지은이의 개인사다.

1장에서는 각 계절별 작품과 관련 이야기 말미에 '팁'으로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박생광의 '누드',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 정점식의 '와상'을 소개하며, 지은이가 하고 싶은, 그러나 옛 그림 본문과는 색깔이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윤복, 단오풍정.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 단오풍정. 간송미술관 소장

◇ 사적해석과 학문적 평가 함께 담아

2장 '옛 그림에 무릎을 치다'에서는 짧은 글들을 모았다. 한국화와 중국화들이 지은이의 사적 이야기 혹은 21세기 한국의 사회적 풍경과 어우러져 펼쳐진다. 가령 김홍도의 '새참'은 이제는 흔한 일상이 돼 버린 우리시대 '혼밥' 문화를 들여다보는 렌즈가 된다. 그런가하면 기생들이 단오날 물가에서 몸을 씻으며 노는 그림인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전통 명절에 무관심한 현대의 중학생들도 '단오'를 기억하게 하는 강력한 기억매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들은 지은이의 생활반경에서 재해석된다. 산행, 꽃 가꾸기, 강의, 친구와 만남, 여행, 독서, 가족 등 지은이와 맞닿아 있는 공간, 일, 사람들이 옛 그림을 해석하는 스키마(schema)가 되고 있다. 각 개인이 가진 각각의 스키마는 같은 그림을 다르게 읽게 한다.

지은이는 화가이자 학자다. 그런 만큼 각 그림과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 화가의 인생, 작품의 시대적 의미,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감상요소, 그림 기법 등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도 작품별로 담고 있다. 300쪽, 1만5천원.

▶ 지은이 김남희

계명대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라대 겸임교수 역임, 계명대 평생교육원 미술이론 강의. 개인전 17회 개최. 지은 책으로 ▷한국미술 특강(2012) ▷중국회화 특강(2014) ▷일본회화 특강(2016) ▷조선시대 감로탱화(2018) ▷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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