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상적인 직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이런 저런 조건에 맞춰 적당히 직업을 선택하고 그럭 저럭 생계를 이어간다. 아마도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대부분 인생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하는 것이 취미이다. 만일 취미 생활이 전문직업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은 없다. 더구나 인생 후반기에 '자아를 실현하고' '후학을 키우면서'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글서예 전문강사 박경애(60) 씨의 삶이 그렇다. 평범한 가정주부의 성실하고 나름 치열했던 취미생활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남들이 은퇴를 생각하는 50대 초반에 서예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갓 성숙기를 맞고 있다. 박 씨에겐 역동성 넘치는 인생 후반부가 이제 겨우 시작인 셈이다.
▶"한글 궁서체의 대구 최고가 되겠다."
박경애 씨가 서예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한문서예를 즐기신 교장선생님을 도와 먹을 갈아주는 일을 맡았다. 그렇다고 서예를 직접 배운 것은 아니다. 교장선생님이 한문서예를 하시는 걸 보면서 싫지 않은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다.
서예를 직접 접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처녀시절 경산 한국조폐공사에 근무하면서 퇴근 후 취미 생활로 한문서예를 시작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취미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서 4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끝냈고, 바쁜 일상과 육아 탓에 정신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1남1녀 중) 둘째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그동안 중단했던 서예를 다시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 당시 박 씨는 37살이었다. 그런데 박 씨가 시작한 서예는 그동안 배웠던 한문서예가 아니라 한글서예 였다.
"요즘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한문서예를 쓰면 일일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어야 했는데요. 문득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글을 쓰기 보다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예를 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글 궁서체에 푹 빠졌습니다. 궁서체는 한글서예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단정하고 부드러운 특징이 매력적입니다."
박 씨의 취미생활은 그냥 여가 시간을 보내는 그런 취미가 아니었다. 이왕 한글서예를 시작한 만큼, "궁서체에 관한 한 대구 최고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쩌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써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한 셈이다.
"가정주부의 일상속에서 짬(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온 가족이 잠을 자는 밤늦은 시간과 새벽에 서예연습을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각종 전시회 출품 준비나 연습은 심야시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취미를 넘어 한글서예 전문강사로 변신!
박 씨의 성실한 취미생활은 생각보다 빨리 결실을 맺었다. 2004년 대구서예문인화대전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본격적인 한글서예를 시작한 지 7년 만이었다. 당초 세웠던 '대구에서 궁서체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전작가는 되어야 개인적 취미를 넘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오가면서 다시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201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국전작가의 꿈을 마침내 이룬 거이죠."
국전작가라는 타이틀은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든 박 씨의 삶을 바꾸었다. 각급 학교와 복지관·문화센터 등에서 강의 요청이 잇따르고, 각종 서예대전 초대작가 출품 만도 연 30건이 넘는다.
"팔공복지관(월), 강동어르신행복센터(화), 지산문화센터(수), 대구중구노인복지관(목), 수성초교 학부모 동아리(금), 월서초교 방과후 수업(토) 등 일주일에 6일간 강의 일정이 꽉 짜여 있고, 매달 각종 대회와 전시회 출품작을 2~3건 씩 써야 합니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박 씨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어린이부터 9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서예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세월의 차이를 넘어선다. "부드러운 붓으로 쓰는 사람의 의도에 맞게 획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먹물의 흐름과 붓 끝에 주는 힘을 조절해야 합니다. 자연히 집중과 몰입·명상의 효과가 생기죠. 어린이는 바른 글씨를 쓰면서 바른 마음을 키우고, 어르신들은 집중과 몰입으로 혈관과 신경계의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고루하고 답답한 느낌이 있는 전통서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박 씨는 가끔씩 캘리그라피 수업을 병행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재미가 없으면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죠.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캘리그라피 수업으로 재미를 돋우고, 어르신들에게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손자·손녀들과 함께 재미 있게 놀 수 있도록 틈틈히 쉽표를 줍니다."
박 씨는 "고희(古稀:70세) 가 됐을 때, 각 센터별 수강생과 함께 동시에 작품전을 여는 것이 소망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7, 8세 어린이부터 아흔살이 넘는 어르신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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