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솥을 깨고(破釜) 배를 침몰시킨다(沈舟)는 파부침주는 도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나타낼 때 쓰인다. 배를 불태우고 솥을 깨서 없앤다는 손자병법의 분주파부(焚舟破釜)와 같다. 약자가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쓰는 전략이다.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장한(章邯)을 파견하여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의 40만 군사가 집결한 거록(鉅鹿)을 향해 북상했다.
장수(漳水)를 건넌 항우는 배를 모두 침몰시키고 밥솥을 깨뜨렸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사흘 먹을 식량만 가지고 출발하도록 했다. 배수의 진을 친 항우의 전략은 통했다. 퇴로가 없어진 초나라 군사들은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은 진나라 군사를 맞아 20만 명을 몰살시켰다.
진나라의 장한은 나머지 20만 명의 군사들과 함께 항복했다. 진나라는 무너졌고 항우는 일약 패주(霸主)로 등장했다. 거록 대전은 중국역사에서 소수의 약자가 강자를 이긴 전형적인 전투로 파부침주를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고사이다.
현재 미중 무역 전쟁은 두 나라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뒷걸음을 치면 파멸의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중국은 약자의 입장에서 중일전쟁 때의 지구전을 들고나와 파부침주의 결사 항전의 태도를 보인다. 한일 양국의 무역 전쟁도 이에 못지않다.
한국은 미국이 강력하게 연장을 요구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종료시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일본도 찔끔 무역규제를 완화하면서도 섣불리 물러설 기미가 없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모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골목길에서 (적을) 만났을 때는 용감한 자가 이긴다(狹路相逢勇者勝'협로상봉용자승)는 중국 속담이 있다. 한국에는 아베 정권과 싸울 파부침주의 각오가 필요한 것 같다.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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