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은 합계 5천500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독일은 개전 직후인 1940년 6월 프랑스의 항복을 받으며 유럽 대륙을 점령한다.
동서 두 개의 전선을 마주했던 히틀러는 영국에 "제국 유지를 보장할 테니 독일의 유럽 지배도 인정하라"며 타협하려 한다. 처칠이 이를 일축하자 히틀러는 7월 영국 상륙전을 준비하며 영국 공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두 나라의 공군은 잉글랜드 남부 바다 위에서 필사적으로 격돌했다.

그러나 독일은 훈련된 영국 공군과 잘 정비된 연안 레이더망을 극복하지 못했다. 조급해진 히틀러는 런던 등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명령한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1천963대와 2천550대의 항공기를 투입하였다. 1940년 여름 3개월간의 공중전에서 영국은 승무원 500여 명과 항공기 1천500여 대를, 독일은 2천500여 명과 1천900여 대를 잃었다. 결국 영국이 승리하며 독일군의 본토 상륙을 좌절시켰고, 1년 뒤 미국이 참전할 때까지의 시간도 벌었다. 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과 독일의 항복으로 이어진다. 연합국이 승기를 잡은 1944년, 영국은 자국 하늘에서 격추된 독일 전투기 잔해를 용해해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승리의 종'을 만들었다. 손잡이에는 승리를 뜻하는 'V'(victory), 몸체에는 얄타회담에 참석한 연합 3국의 지도자 처칠,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얼굴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영국 공군 전상자와 그 가족들을 후원하는 기금을 위하여 이 종을 제작하였다고 새겼다. 둔탁한 두랄루민 종에는 오랫동안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전전하던 런던 시민들의 환호와 기쁨의 눈물이 함께 묻어 있다.
매년 광복의 달 8월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묵직한 종소리이다.
경북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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