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순 한국독일입양인협회 대표 '최면수사 통해 사소한 기억이라도 떠올리고 싶어'
동생 박진우(45) 씨와 함께 1976년 독일(당시 서독)로 입양됐던 박기순(48) 씨는 최근 대구경찰청을 방문해 최면 수사를 받았다.
그는 1991년 첫 한국 방문을 시작으로 30여 년 동안 10차례 이상을 오가며 애타게 가족을 찾아왔다. 그동안 4차례 DNA검사를 받았고, 2013년에는 TV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번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최면수사를 통해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을 찾기로 한 것이다.
최면 수사는 당일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듭니다. 서서히 몸이 흔들립니다'라는 수사관의 말과 함께 시작됐다. 최면에 빠진 박 씨의 기억에 따르면 할머니는 군 부대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은 흙길을 올라가야 할 정도의 언덕 위에 있었고, 박 씨는 맨발로 식당 밖을 서성였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갔고, 아버지는 구석진 모퉁이에 홀로 앉아 항상 술을 마셨다.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최면수사가 이어졌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며 "오랜 기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법을 훈련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씨에 따르면 가족은 모두 7명으로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와 오빠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남자 사촌 2명이 있는 고모(이모) 집으로 남동생과 함께 보내졌는데, 이후 박 씨는 1975년 11월 대구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백합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남동생은 2일 뒤에 같은 보육원으로 오게 됐는데 둘 다 그 과정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 남매를 함께 입양했던 양부모는 늘 독일인임을 강조했다. 두 살배기였던 남동생은 별 어려움 없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였지만 이미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했던 다섯 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양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독일인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한국은 내 일부분이자 내 모든 것"이라며 "학창시절에도 서독으로 파견됐던 광부, 간호사 자녀와 더 친하게 지냈을 정도"였다고 웃어 보였다.

박 씨는 "특히 자식을 낳아보니 친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알고 싶고, 나와 닮았는지 보고 싶고, 다시 만나서 손잡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날 수사를 마치고 대구 주한미군 부대 캠프 워커 인근을 둘러봤다. 군부대 인근 낮은 언덕들이 있는 곳이라는 기억이 비춰 남구 봉덕동, 대명동 일대가 아닐까 유추한 것이다. 한국독일입양인협회 대표이기도 한 그는 "한국은 내 조국, 한국인으로의 뿌리를 항상 잊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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