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동안 부모님 찾아헤맨 입양인 박기순씨…동생 박진우 씨와 함께 서독으로 입양돼

입력 2019-08-25 17:19:18

박기순 한국독일입양인협회 대표 '최면수사 통해 사소한 기억이라도 떠올리고 싶어'

1975년 11월 대구 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독일로 입양된 박기순(48) 씨가 최근 매일신문사에서 어린 시절 사진을 들고 입양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975년 11월 대구 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독일로 입양된 박기순(48) 씨가 최근 매일신문사에서 어린 시절 사진을 들고 입양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동생 박진우(45) 씨와 함께 1976년 독일(당시 서독)로 입양됐던 박기순(48) 씨는 최근 대구경찰청을 방문해 최면 수사를 받았다.

그는 1991년 첫 한국 방문을 시작으로 30여 년 동안 10차례 이상을 오가며 애타게 가족을 찾아왔다. 그동안 4차례 DNA검사를 받았고, 2013년에는 TV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번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최면수사를 통해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을 찾기로 한 것이다.

최면 수사는 당일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듭니다. 서서히 몸이 흔들립니다'라는 수사관의 말과 함께 시작됐다. 최면에 빠진 박 씨의 기억에 따르면 할머니는 군 부대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은 흙길을 올라가야 할 정도의 언덕 위에 있었고, 박 씨는 맨발로 식당 밖을 서성였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갔고, 아버지는 구석진 모퉁이에 홀로 앉아 항상 술을 마셨다.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최면수사가 이어졌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며 "오랜 기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법을 훈련한 것 같다"고 했다.

박기순 씨가 최근 대구경찰청에서 최면수사를 받고 있다. 박 씨는
박기순 씨가 최근 대구경찰청에서 최면수사를 받고 있다. 박 씨는 "가족을 찾고 싶은데 남아있는 기억이 얼마 없어 최면수사를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주형 기자.

박 씨에 따르면 가족은 모두 7명으로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와 오빠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남자 사촌 2명이 있는 고모(이모) 집으로 남동생과 함께 보내졌는데, 이후 박 씨는 1975년 11월 대구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백합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남동생은 2일 뒤에 같은 보육원으로 오게 됐는데 둘 다 그 과정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 남매를 함께 입양했던 양부모는 늘 독일인임을 강조했다. 두 살배기였던 남동생은 별 어려움 없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였지만 이미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했던 다섯 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양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독일인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한국은 내 일부분이자 내 모든 것"이라며 "학창시절에도 서독으로 파견됐던 광부, 간호사 자녀와 더 친하게 지냈을 정도"였다고 웃어 보였다.

1975년 11월 대구 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독일로 입양된 박기순씨가 최근 매일신문사에서 어릴 적 사진을 들고 입양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975년 11월 대구 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돼 독일로 입양된 박기순씨가 최근 매일신문사에서 어릴 적 사진을 들고 입양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박 씨는 "특히 자식을 낳아보니 친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알고 싶고, 나와 닮았는지 보고 싶고, 다시 만나서 손잡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날 수사를 마치고 대구 주한미군 부대 캠프 워커 인근을 둘러봤다. 군부대 인근 낮은 언덕들이 있는 곳이라는 기억이 비춰 남구 봉덕동, 대명동 일대가 아닐까 유추한 것이다. 한국독일입양인협회 대표이기도 한 그는 "한국은 내 조국, 한국인으로의 뿌리를 항상 잊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