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따로] 오만과 편견…한·일 갈등을 보며

입력 2019-08-21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첫눈에 반한 사랑도 사람의 편견에 의해서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로맨스 소설이다. 진실성보다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잘못된 감정들이 개입되고 그러한 감정들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도 그러한데 하물며 한 사회와 국가는 오죽할까.

지난 칼럼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내용을 쓰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한·일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많은 말들과 행동들이 표출되고 있다.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는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시민들은 적이 아니며, 양국의 시민사회가 연대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100% 동감한다.

그런데 일본의 시민사회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한국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시민사회 내에서도 황색 제복을 입고 욱일기를 들고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모습을 자부심에 가득 차 재현하는 우익단체에서부터 노(NO) 아베를 외치며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가 공존한다. 한국의 시민사회 내에서도 노 아베를 외치는 집단에서부터 친(親)아베를 외치는 집단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일본은 외국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 내에서 아베 일본 총리에게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친일이 애국'이라는 말이 모 단체의 대표와 전직 정치인에게서 서슴없이 공개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선을 넘은 언사이다. 차마 시민단체라는 말을 붙이기도 뭐하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된다고 하지만, 그 자유도 한 사회의 기본적 상식과 가치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경제 보복을 한 외국의 정치인에게 어찌 우리나라를 대신해서 사과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누가 그런 말을 해도 된다는 대표권을 주었던 것인가? 그냥 특정 정치인과 정치 집단의 가치와 정책이 싫으면 합리적인 선에서 비판하면 되는 것이지, 우리에게 경제 전쟁을 선포한 외국의 정치인과 우익 집단들과 뜻을 같이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러한 언사들을 일본의 우익 언론 매체들은 자신들의 역사 부정과 수출 금지가 한국 내에서 지지를 받는다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일본 우익의 초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자신들보다 한참 뒤처진 시절, 아시아 최고라는 자부심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과의 격차는 좁혀졌고, 중국은 이미 일본을 능가해 G2가 되었다. 최근 한반도 문제에서의 일본 패싱,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성장, 평화헌법의 개정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이 아베를 비롯한 우경화 세력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었다.

19세기 말 '탈아입구'(脫亞入區·아시아를 벗어나 세계로 나간다)를 외치며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추진하고,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었던 일본의 우월감이 21세기 들어 초조함으로 변했다. 그 초조함은 한국 경제를 정밀 타격하는 다급함으로 나타났고, 더 나아가 향후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대의 합법적인 보유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본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군국주의적 방향은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갈등이 유지되는 냉전 구도가 유리하다.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은 구도이다. 이에 우리는 일본의 본격적인 재무장화를 통한 군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경계하고 주목해야 한다. 일본 우익의 오만과 편견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교훈처럼 역사적 안목으로 현재를 읽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강대국 사이에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은 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문할 때이다. 우리의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지 모른다.

광복 74주년인 2019년, 그 어느 해보다 일본과의 역사 문제와 경제 문제가 뜨겁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듯 한·일 갈등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에릭 홉스봄이 말했듯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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